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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종 교
글쓴이     운영자 2005-05-17 오전 11:4 (조회 : 2207)
제목     연등이란?








<연등의 역사>

 

연등(燃燈)은 등불을 밝힌다는 말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어두운 세계(無明)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등(燈)에 불을 밝히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연등이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간등(看燈)'이란 이름으로 신라 진흥왕(서기 551년)때에 전사한 장병을 위하여 外寺에서 7일동안 설행 (국가에서 행사를 주관하고, 국왕이 참여함)되었고 선덕여왕 때에는 황룡사에서 열렸다는 것 외에도 다수의 기록이 있는 등 신라 이래로 국가차원에서 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전통의례와의 습합(習合)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성대히 국가적 종교놀이 문화로 발전하여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春燃燈 冬八關』 이리하여 연등도감(燃燈都監)과 팔관보(八關寶)라는 행사주관기구를 두고 국가에서 직접 재원을 조달하고 주관하는 전국가적 행사로 발전하였습니다. 11월 15일에는 팔관회를, 2월 15일(후일 4월8일)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연등회를 개최하여 온 백성이 잔치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으며 고려말기 공민왕 이후에는 많은 종류의 등을 만들어 각종 깃발로 장식한 등대(燈臺)에 등을 달아 온 누리가 연등일색으로 변한 저녁에 온 장안의 남녀노소가 함께 즐겼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초파일 연등은 계속됐는데 연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초파일에 등 밝히기는 계속되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밤에 통행금지가 있었다. 통금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고, 그 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금했지만 초파일만은 통금이 해제됐을 정도로 사월 연등은 민간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민간에서는 연등회에 이루어졌던 각종놀이를 하는 등,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어 계승되었으나 해방 후에는 민간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사찰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연등의 종류>

 

초파일 연등놀이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등(燈)은 각종 기록이나 민요 등을 통해 볼 때 그 종류가 다양 했다.

이렇듯 상점에서 40여 종이나 돼 초파일이 얼마나 성했는지 알 수 있다. 운종가 즉 종로의 등 파는 집에서 파는 등은 천태만상으로 오색이 찬란하고 값이 비싸며 기이함을 자랑했다. 종로에는 이 등을 보려고 사람들이 담벼락같이 몰려들고 등을 사서는 장난하며 놀기도 하고 등대에 달기도 파는 등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집에서 만들어 달았다. 등의 종류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면서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무병장수를 위해서는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 출세를 위해서는 잉어등을, 척사를 위해서는 호랑이나 표범등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과일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꽃이나 어류 또는 여러 가지 동물모양을 본떠서 만들어 등 이름만 해도 40여 종에 이르며 그 색깔과 모양이 매우 다채롭다. 등을 만들 때 종이로 바르기도 하고, 붉고 푸른 비단을 바르기도 한다. 끼워 버선과 화조를 그리기도 하고 평평한 면과 모가 진 곳마다 삼색의 돌돌만 종이나 길쭉한 쪽지 종이를 붙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펄럭이는 모습이 매우 멋있다.

북 모양의 등에는 장군이 말을 탄 모양이나 삼국지의 고사를 그렸다. 또 연등 안에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를 잘라 말 타고 사냥하는 모습이나 매, 개,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 모양을 붙여 바람에 빙빙 돌게 하여 밖에서 그 그림자를 본다. 이를 영등(影燈), 회전등 또는 주마등(走馬燈)이라 한다. 이밖에도 일상에서 불을 밝힐 때 쓰던 등잔 이외에 궁궐이나 집안에서 쓰던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목어등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를 상징하며, 이를 본받아 수행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목어는 길이 1미터 가량의 속이 비어있는 나무 물고기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색 바래고 나뭇결 굵은 목어를 바라보노라면 해맑은 그 소리가 귓가에 은은하다. 그 목어를 전통등으로 만들었다.

종등

종 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어 왔다. 또 불교에서는 종 소리로 지옥 중생을 구제하여 악업과 고통을 멈추게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새겨 많은 옛 사람들이 초파일전에 종등을 만들었다. 종등에는 어머니를 부르는 아기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난다해서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르는데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을 그려 넣었고, 윗부분에는 음통과 한 마리의 용을 만들어 붙였다.

학등

고고한 자태가 속세의 어지러움을 모두 잊게 한다는 새 학. 십장생 가운데 하나인 학은 가장 오래사는 새라 해서 신선 선(仙)자를 써서 선학(仙鶴)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무병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옷이나 이불, 병풍 등에 학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학등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주의할 것은 깃털이다. 불을 켠 연후에 하나하나 살아나는 깃털의 가벼움이 가지런함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북등

불교에서 북은 사물의 하나이며 예전부터 정의와 신의를 상징하며 우리민족의 기상을 대변하였다 예전에는 북등에 장군이 말탄 모양을 그리거나 삼국때의 고사를 그렸다고 한다. 이 북등은 용과 구름문양과 양쪽 마구리 부분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었다. 용은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물과 수신을 상징하며 태극은 만상의 근원이며 인간 생명의 원천으로 진리를 뜻한다.

항아리등

항아리 또는 화병은 단순히 꽃을 꽂기 위해서나 무엇을 담아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선조들은 단순한 기능적인 측면 뽄만 아니라 보병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진귀한 병. 항아리병은 가정과 국가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생각하여 이러한 병들은 집안에 장식하여 가까이 두려하였다.

수박등

수박등은 씨가 많아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또한 넝쿨식물의 특성인 긴 줄기로 인하여 장수의 의미 까지 함께 담아 기원하였다. 마늘등, 참외등, 머루등도 모두 같은 의미로 상징되었다.

잉어등

양자강 상류에 있는 용문이라는 협곡에서 잉어들이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등용문 고사와 같이 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장원급제를 통해 출세하고자 하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또한, 부귀와 장수를 의미해서 물고기 문양 가운데 잉어 문양을 최고로 여겨져 왔다.

주마등

영등(주마등)안에는 선기(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사냥하는 모양이나 매와 개를 데리고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를 사냥하는 모양을 그려서 그것을 선기에 붙인다. 이러한 것들이 바람에 의하여 빙빙 도는데, 밖에서는 여기에서 비쳐 나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자를 본다.

누각등

누각등은 집등의 형태에서 장식성이 강한 형태의 누각등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넓은 의미에서 집은 주거용으로서의 사람의 집을 벗어나 신의 집이라는 종교관념과 태양의 집, 달의 집, 바람의 집등 우주론적 관념이 투사된 공간으로 여겨왔다. 민속 신앙에서의 집은 여러 신이 사람과 더불어 살고 있는 만신전 곧 신의 집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집의 사제자 구실을 하며 성주, 터주, 조왕, 업주 측신등 많은 신을 신봉하는데 집이 곧, 안주와 번영의 상징이면서 근거와 뿌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탑등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건축물(묘)로 시작하여 지금은 공양과 예배의 의미로 많이 세워져 부처님에 대한 칭송과 극락왕생, 국태민안과 개인의 축원을 기원하였다. 민속에서 마을 앞에 적석이나 석탑의 형태로 동무더기를 높이 쌓아 동민들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탑신앙도 있다. 이 탑등은 목탑형식을 빌어 각 층마다 기와와 문 그리고 잡상, 풍경으로 장식하였다. 문을 금강저 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 무늬는 불가의 상징물인 금강저 모양을 디자인한 것으로 금강저로 보리심의 뜻을 지니고 있다.

용등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며,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선신으로 섬겼다. 농경 민족인 우리에게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므로 가뭄이 심할 때에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냈던 것처럼 용은 풍농과 풍어의 상징이었다. 또한 용은 사령중의 하나로 그 권위와 조화에 초능력을 지닌 상상의 동물로 임금을 나타내었고, 불교에서는 호법신과 호국신의 역할로 많은 고사에 등장한다.

가마등

옛 문헌 속의 다양한 등은 그 이름만 전해올뿐 정확한 모양에 대해서는 남아있지 않다. 가마등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등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옮기는 연의 모양을 기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람을 태우고 다니던 조그만 집 모양의 가마. 평민들의 경우에는 시집가는날과 죽어서 저승갈 때 두 번 탄다는 가마는 그 모양도 화려하여 등의 좋은 소재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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