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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산강에세이
글쓴이     정근영 2012-03-02 오후 7:29 (조회 : 1894)
제목     40년 째 째려보는 드라마 (삼일절)






삼일 운동이라 함은 모두들 잘 아시다 시피

각 단체별로 지역별로 독립운동이 산발적으로 진행 되었지만

힘의 분산으로 인해 그 효과가 미미하자 힘을 한테 묶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각 종교별 단체별 지역별 수장들이 연합하여 민족 대표 33인을 구성하고 1919년(기미년) 3월 1일 정오에

민족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 국 내외에 자주독립을 선포한 날입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가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오산 중고 였는데...
오산학교 설립자가 33인의 한사람인 남강 '이승훈' 선생이었쥬~


국가에 충성하라는 설립자의 정신을 늘 교육받아 온 오산학교 제학생들은
어느 학교 학생들 보다 민족 정신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졌을 뿐더러 민족 대표인 이승훈 선생께서 설립한
오산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 때... 사팔뜨기라서 보기에 좀 띨띨해 보이는 친한 친구 한넘이 있었는데...
그 넘은 오산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저보다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기에 좀 띨띨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즘 말하는 왕따를 자주 당하곤 하였지요.
그 때 마다 제가 나타나 원만히 잘 해결해 주다 보니 저와 굉장히 친하게 되었는데

저 하고 같이 댕기면 언넘들이 갈구지를 못하니까 그 친구가 저를 더 따라 다닌 것 같습니다. ㅎㅎ


이렇게 그넘은 저에게 늘~ 고마워 했으며 좀 띨띨해 보이는 것 외에 아주 의리가 있어
둘은 아주 친하게 잘지냈었지요.

그러던 중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
.
.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 임과 朝鮮人의 自主民 임을 宣言 하노라

해설...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로 시작되어


온갖 신의를 저버린 일본을 벌 주려 하는게 아니라
조선왕조의 굳건한 기상과 자유평등권을 누려온 우리민족은 거짓과 위선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 찾으려는 것이다.


...라는 것을 요지로서 작성 된...


첫 줄 부터 애매한 문구와 어려운 말로 시작된 한문 투성이의
10단 3장으로 쓰여진 장문의 독립 선언문 원문을 딸딸 외워벼렸고
또... 33인의 이름과 그분들의 출생지, 업적 등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을 통째로 외워버렸쥬~ㅎㅎ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 독립선언문 원문을 다 외우는 넘은 우리나라에서
우리 둘 뿐인 줄 알고 있습니다 ㅋㅋ 지금생각 해 보면 완전 미틴넘이었쮸~~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그런것이었어요~ㅎㅎ
어느 학교 학생이 감히 생각 하지도 못한...
세상에...그걸 다 외우다니 ㅋㅋ)


이렇게 민족 지도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의 긍지가 배인 오산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ㅎㅎ

그 당시 더욱 민족 중흥에 긍지를 갖게했던 계기가 있었는데...


정부 고위층에 산발적으로 현존하고 있었던 친일파 무리들의 은근하면서도 제법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수길' 작가가 쓴 '북간도' 라는 책이 발간 되었는데 그 책을 본 후 더욱 그러하였지요.


만주 벌판과 연해주를 무대로 활약하는 독립군의 맹 활약상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억울하게도 일본인에게 온 가족이 희생되어 치를 떠는 주인공을 내 새워 일본군을 무찌르는 용감한 장면은 아직도

제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감격적이었고 마치 제가 주인공이 된 양 신이 났었으며
날밤을 까며 상 중 하 세권을 다 읽은 덕에 더욱 독립운동사에 심취하게 되었어여~ㅎㅎ


그러니까... 그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적어도 삼일운동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모르는 것 빼 놓고 다 알게 되니까...
주위사람들이 우리 둘을 보고 무시무시한 경지에 까지 이른 넘들이니 함부로 갈지를 마라~!! 라는
소문이 쫙~ 퍼졌었어요.ㅎㅎ


선생님들 조차 괴상한 놈으로 취급하여 무슨 질문을 받을까 싶어서 그런지
우리 둘과는 상종을 하지 않으려 했고 알게 모르게

변소 청소를 빼준다든가
떠든 애들 축에 들고 또 숙제 같은 걸 안해가도
별로 나무라지 않은 특혜를 은근히 누리곤 했어요. ㅋㅋ


독립선언문을 어렵게 다 외우자 저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말았는데요~
오산학교는 기독교 학교여서 성경책을 자주 보게 되는데 무거운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기 싫다면서

내 친구넘은 비장한 각오로 성경책 구약 신약을 졸업 전까진 다 외워 버리겠노 라고 사팔뜨기 눈깔을
번뜩거리게 굴려 대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 납니다.ㅎㅎ

저 보다 훨씬 더 지독한 근성을 갖고 있던 그넘 눈깔을 보니 저게 드디어 디질려고 환장하여
마침내 성경을 다 외우는 사고를 치고 말겠군아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ㅋㅋ


서로 다른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또 군대 문제로 얽히고 섥혀 친구는 고향인
충남 당진군 고대면 진관리 1구로 내려간다는 소식 이후 헤어지게 되었고
그 후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지만 가끔 동창생들로 부터 들은 얘기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천재적인 감각 때문인지 세상이 따라주질 않아 살맛이 안난다는 헛소릴 해 대며
있다고 들은 바 있었지요. 말하자면 세상을 비관하며 그냥 별 볼일 없이 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 그넘의 삐삐 번호도 알게 되어 서로 안부를 묻고 한번 만나 보자는 정도의 통화를 몇번 한 적은 있지만...
저도 사는데 바뻐 그냥 그냥 있었는데...
몇년 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끝으로 그 넘과의 인연이 끝을 맺었지요.

그 무시무시 한 넘이 성경책을 다 외웠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ㅋㅋ
이제 독립선언문 원문을 외우는 넘은 우리나라에 저 혼자 뿐이겠군아 하며 쓴 웃음을 지어보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다 외우고 있나 오늘 함 검토를 해 보니...


아구야~~ 문장이 이어지질 않고 기억이 아삼삼하여 도무지 다 외워 내질 못하겠어요~ㅎㅎ
33인도 떠올려 봤지만...20명도 제대로 기억해 내질 못하겠군요~~ ㅋㅋ.

저도 이제 완전히 맛이 간 겁니다요 글씨~ ㅋㅋ


.
.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립 운동사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1973년 삼일절...

종로 2가에 있는 파고다 공원.


33인 중 당시 유일한 생존자로 생존해 있는 팔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이갑성' 선생의
웅변을 들은 후 부터였어요~


그의 강연 내용은...
목숨 받쳐 조국을 위해 싸웠던 민족운동 독립투사들의 생생한 전쟁터의 모습을 손에 땀을
쥐게하는 상황 설명과 함께 그 분들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높이 받들어
교육의 지표로 삼으라는 강연이였구요.


나라에서 그들의 업적을 우습게 알거나 방치하게 되면 나중에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느 누가 앞장서 나라를 구하겠느냐?? 면서...

따라서 독립유공자들을 한명이라도 낙오 없이 밝히고 본인이 사망하여 없다면 후손이라도
찾아내어 그들에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상을 해 주는게 타당하다는 요지였어요~


팔순의 나이에도 쩌렁 쩌렁한 청년같은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하는 강연은 위엄 뿐 아니라
그분의 절대 절명한 국가관에 대한 사명감과 생사를 같이 행동한 독립투사들에 대한
애정이 배여있음을 발견하였지요.


당시에는... 가장으로서 나라를 구하려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자 형편없이 가계가
기울어 생계도 잇지 못하는 독입유공자들의 가족 또는 전쟁 상이용사들의 가족이 많았었는데
그들의 원망이 방방곡곡 눈물로 얼룩져 있을 때이라 더욱 설득력이 있었지요.



그 명 강연에 감격과 흥분을 참지 못하고 만세삼창을 부를 땐 아마도 제가 제일 목소리 크게
대한독립 만세~!! 를 외치며 만세를 불렀는데...

오징어 땅콩 셀레민트 껌 같은 걸 파는 어떤 장사 아줌마가
내 옆에 있다가 앗~!! 깜딱이얐~!! 하고 놀래 자빠지는 걸 목격하기도 했어요. ㅎㅎ


당시 조선일보에는 어떤 까까머리 고등생이 감격하여 만세를 너무 크게 불러 주변의
여러사람들이 고막이 터지거나 기절하였다 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접니다 ㅋㅋ



이갑성 선생의 강연이 끝나자 마자
입담 좋은 할아버지들이 군데군데 몇명씩 혹은 몇 십명씩 사람들을 둥굴게 모아 놓고서는 ...
본인이 격었던 생생한 실화 또는 간접적으로 들었던 간에 독입 운동이나 6.25전쟁에 관하여
나름대로 유식하고 일가견 있는 내용으로 여기저기에서 소 강연이 펼쳐졌죠~~


그 중 어느 할배가 얼굴이 싯뻘개 갖고 입에 침을 티기며 열변을 토하며
3.1운동에 관하여 재밋게 강연하는 곳에 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기미년 3월 1일 정오에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서명 낭독하고
전국에 배포 하려는 계획을 그리 세웠으나...


친일파들이 정보를 누출시켜 일경들이 쫙 깔린 상태에서는 독립선언문을 발표 할 수 없자
긴급 변경하여 무교동에 있는 음식점으로 유명한 명월관에서 33인이 모여 서명하고 공표한 후
일경에게 연락하여서 잡히는게 아니라 모셔가라 하여 체포되는게 아니라 스스로 모시킴을 당했다 하눈군여~` ㅎㅎ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당시 강대국 뿐 아니라 범 세계적으로 전달하는 메세지가
폭력으로 얼룩지면 안된다 하여 아마도 평화적인 성명을 내고 스스로 자수한 후
33인 모두 다 잡혀가 각가 2년~3년 징역을 살았다고 해여~


그리고 1919년 3월1일 그 날 파고다 공원에 모여 있던 수 많은 군중들은 일경과 대치하면서
33인에 해당은 안되지만...정재용이라는 열혈 학생이 독립선언문을 대신 낭독하였고

대치하고 있던 일경을 밀어내고 시내로 평화적인 시위를 한 게 기폭제로 작용하여
유관순의 아우내 장터 등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발발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자료가 없어 일경의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이날 운동에 참가한 사람중에 사망7,500명 부상 15,000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여러가지 정황을 봐서 대외 이미지 때문에 일본이 축소발표한 거라고 그리 알고있어요.
우리측에서는 사망 18,000명 부상 8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집계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일경의 총칼 앞에 쓰러졌다니...
강연을 듣는 저도 통탄스러운 마음에 주먹이 절로 불끈쥐어지는 걸 느꼈지요



이 날 이갑성 선생을 본 후 수년이 지나
'이갑성' 옹은 삼일절 기념사도 못 읽을 만큼 차츰 쇠진해져 90세의 일기로 마지막 33인의 한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걸
신문에서 보았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기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더러 나라에서도 '이갑성 ' 선생의 뜻을 전폭 수렴하여

국가 유공자 보호에 관한 관련 법규가 제정되었고 본인들이 사망했거나 행발불명일 때는 아들 딸 또는 손자까지 범위를 넓혀
독립유공자, 순국선열, 애국지사로 명명하고 공을 세운 등급별로 표장장과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였지요.



그 날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꽉 찬 파고다 공원에서의 감격의 명 연설을 들은 이 후 저는...
그렇잖아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터라 매년 돌아 오는 삼일절에 파고다 공원의 기념식장에
40년 동안 서너번 정도만 빠지고 거의 다 참석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삼일절 날은 보통 삼부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이 열리는 데...
요때는 개인신분으로는 참석지 못하였고 기념식이 끝나면 바쁜 사람은 가고 나머지는
도보로 15분 쯤 걸어가면 종로 2가에 탑골공원에 (파고다 공원) 다시 모였지요.


이 공원에서 삼일절 행사 뒷풀이를 하는데...

그 풍경이 너무도 재밋다고 해야 하나??
사실 하도 많이 들어 별로 새로울게 없는 독립운동사 이야기 보다 할일도 별로 없는저로서는
야바위꾼, 요술쟁이, 풍각쟁이, 장삿꾼, 등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대는 게 재미가 있어
매년 파고다 공원을 찾게되었는지도 모릅니다.ㅎㅎ


총각 시절... 독립선언문을 유창하게 외워대는 것을 보고
저걸 다 외워?? 하며... 신기해 하면서도 또...인간도 아니라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저에게 뻑~ 간 마누라와 결혼 한 후...


달달한 사이다 사준다는 제 꼬임에 빠져 삼일절 행사에 멋도 모르고 따라 왔다가 저는 너무도 재미있었지만...
하루 죙일 진행되는 행사에 너무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광경에 혀를 내두르고는

그 후 어떤 꼬임에도 안 넘어가고 다시는 행사장에 안 따라나서고 있는 마누라가...
평생 파고다 공원을 들락거리는 저를 보고서는...

'참으로 할일도 없따~ !! '하며 잠방거린 제 성격을 신혼 초 부터 지금까지 계속 빈정거려 왔지만...


삼일절만 되면 전날 밤에 잠을 설치게 되고 또 제 얼굴에 비범한 위엄이 깃들고 아무도 못 말리듯
갑자기 엄숙한 폼까지 잡으니까...

이제는 뭘 어쩌지도 못하고 그 날만 되면 구두를 잘 닦아 내 놓는다 든가
세탁소에서 찾아 온 양복을 다시 손질해 입혀 준다든가 하여
마치 독립투사를 배웅하듯 정중함까지 보였으며

그런데 가면 중절모와 두루마기가 더 어울릴거니까 나이 쫌 더 들면 한벌 사준다 고 까지 하니...
다 늙은 마누라가 이제사 철이 좀 드나 봅니다 ㅋㅋ



이렇게 매년 삼일절 기념식에 누가 오라고 안했지만 독립투사의 살신성인 투혼의 정신이
청소년 때 내 가슴 속에 멋지게 자리잡고 있던 때문이었던지...

그동안의 삼일운동 변천사를 나름대로 느끼고 있던 중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처음 강연을
듣던 그 시절로 부터 40년 세월이 후딱 지나갔군요.


독립 유공자를 국가에서 보상 할 초창기 때에는...

엄격하게 선별하고 선정한 독립유공자들 중에 독립운동에 직접 참석하여 지휘한 장군 또는
대장 등 계급 높은 상위 층과 기여도가 높은 분들로 이루워졌었으나...

40년 세월 동안 이제는 그 어떤 직위나 직종의 유공자라도 누구도 빠트려지지 않고 다
선발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작년에는...
마굿간지기, 군복 세탁지기, 창고지기,의약품 운반지기, 등이 하급 유공자들이 선발되었고
물론 당사자들은 사망한지 오래이고 그들의 손자소녀들이 할아버지 대신 눈물을 흘리며
또는 다소 겸연쩍어 하며 시상대에 오른 것을 볼 때는

정부에서 이제는 살만한 나라답게 국민의 투혼을 의리있게 생각하여 이런 분야 만큼은
보상을 참으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되곤 했어요.


말이 하급 유공자이지 그 분들이 맡았던 직종은 어떤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쥬~
독립운동에 참석했다는 그 자체 만으로 기상을 높이 존중해 드려야 되니까 말예요~~


이제 세월은 자꾸만 흐를것이고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올 삼일절 날은 어떤 유공자가
선발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해 지고
십년 후 아니 더 먼 세월 뒤에는 어떤 유공자가 선발 될 것인지 계속 궁금하게 될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몇 안되는 님들께서는... 40년 세월동안 한꺼번에 삼일절 행사를 다 보았으니...
이틀 뒤로 다가 온 올 삼일절 부터 까이꺼 일년에 한번씩 오는 삼일절 날
직접 행사장에 참석은 못하시겠지만...


신문지상이나 티비뉴스를 통해 올 해 유공자들은 어떤 직종에 종사했던 분들이
선정되었나를 신경 써서 함 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리의 삶의 근원은 민족 중흥에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며...
투철한 독립투사들의 삶이 곧 우리의 삷의 원천임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40년 이어 온 한편의 드라마의 지난 줄거리를 서투나마 핏빨 선 눈으로 잠 안자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얘기해 드렸으니...


일년에 한번 방영되는 드라마를 꼭 보시고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짐작해 보시고
또 삼일운동 사의 정신을 본인의 삶에 대입시키시어 더욱 훌륭한 국가관을
정립시키시길 바라겠습니다 ㅎㅎ^^


아마 양질의 삶을 사시는 것 같은 느낌이 느꺼질건데요~ 그 재미가 아주 쏠쏠 할 겁니다 ㅋㅋ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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