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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산강에세이
글쓴이     산강 정근영 2006-04-10 오전 11:0 (조회 : 2785)
제목     김정숙과 김영희

내 고향 강원도...

고향 시골 집에서 마주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 밑에 위치한 낡고 오래된 한옥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동네 사람들은 예배당 집 이라고 불렀다.

수리한지 수 십년도 더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곧 무너질 것 같이 허름하기 짝이 없는 그 예배당 집에는
'김정숙'이라는 이웃 집 누나가 살고있었다.


김정숙 누나는...

쌍꺼풀 살짝 진 크고 빛나는 눈에 항상 우수에 잠긴 듯 한 그윽한 분위기가 묻어 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 한번 보게 되는 매력적인 눈을 가진 누나이다

옥에 티 처럼 눈 밑에는 자그마한 곰보 자국 두개가 또렸히 있었지만 양 볼에는 반달 같은 보조개가 살포시 이쁘게도 패여

살짝 미소지을 때는 누구에게나 싱그럽고 정겨운 느낌을 주었으며

고즈녁한 몸매에서 풍기는 우아함에는 유행에 한참 뒤진 낡은 옷을 입고 다니는 데도 청아한 기품이 우러나 보이며
하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이 받쳐준 전체적인 모습은 드믈게 보는 미인이었다.



정숙이 누나의 늙은 어머니는 니어카에 고물 나부랭이나 수집해 팔기도 하고 부둣가 어판장에 기웃 거리며
파치 난 생선 몇 마리를 얻어와서는 사고로 인해 절름발이가 된 아버지를 위해 곧 잘 생선을 구워 대기도했다.

누나의 아버지는 한 때 중앙시장 한켠에 포목점을 크게 하면서 동네 유지로서 잘 나가던 때가 있었으며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물심양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 인심도 크게 얻었다.

또한 각별한 신앙심으로 교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으며
장로의 직분으로 교회를 세군데나 설립하는데 있어 땅을 희사하며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대단한 분이셨다.

그러나...위로는 두 오빠가 있었는데 사업을 하던 큰 오빠의 사업 실패로 가사가 탕진되어
빚을 크게 지게 되자 두 오빠 모두 객지로 돈 벌러 간다며 나간 후 몇 해가 되었으나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이렇게 갑자기 가난해 진 탓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누나의 집에는 차츰 사람의 발걸음이 멀어졌고
누나의 아버지에게 큰 신세를 졌던 많은 사람들도 안면을 싹 바꾸는 냉정함 마져 보였다.

누나의 아버지는 그저 허허허..하며 의미 모를 웃음만 지을 뿐 결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 후 업친데다 겹친격으로 시장에 난 엄청난 화제로 인해 옆에 가게의 노인을 구하려다가 왼쪽 발가락이
모두 오그라질 정도의 큰 화상으로 발목을 절단하여 불구의 몸이 되어 모든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평생을 몸 바쳐 이룩한 교회마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를 경배하는 몇몇 사람들이 가끔 찾아 와 허름한 그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이 모자라는 농번기 때면 지게 작대기를 짚고 쩔뚝거리면서도
가끔씩 품팔이 밭 일을 하러 간신히 다니기도 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였다.

(후일 몇년이 지난 어느날... 내가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라 오기를 부리며 파도를 3270번 세던 날
욕심, 증오, 불만으로 가득찬 나를 보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라 했던 그 예배당 집 할아버지이다.)

착하고 마음씨도 고운 효심 지극한 누나는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대학도 포기하고
당시에는 별로 일거리가 없어 별다른 직장을 구하지도 못하고 남의 집 허드랫 일이나 해 주면서


두 오빠들을 대신하여 집을 지키며 그야말로 능력없는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오빠가 진 빚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는 형편없는 처지였다.

누나의 딱한 사정을 옆에서 보고 있던 나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감각으로 누나에게...............

아후강,자수를 겸한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얼마간의 월급도 받을 수 있는
편물점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나의 어머니는 등촌 교회에 33년 째 다니고 있으며
지금은 연로하시어 주일날 겨우 예배만 드리러 다니고 있는 김삼남 집사님이시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벌이가 시원찮아

시간 나는 대로 동네의 잡다한 궂은 일 들을 몸 아끼지 않고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맡아서 하는 억순이 스타일의 누나로 변해갔다.

착한 마음씨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나의 어머니의 물심 양면한 배려를 누나는 늘~고마워 하며
'이 은혜를 어찌 갚나요??' 를 자주 말하였으며 나의 어머니를 부모이상 의지하며 모든 것을 상의하였고

잘 나갔던 누나네의 집 사정 일때 보다 더 허물없는 관계가 이루워져 친동생이나 다름없게
거의 한집 살림하는 정도로 가까이 지냈었다.

낮에는 편물점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시간 날 때 마다 주로 근처에 있는 염색공장 일꾼들과 시멘트공장 일꾼들의
작업복은 물론 다방 아가씨들의 속옷 가지등을 맡아 세탁 해 주며 얼마 씩 받고 있었다.

성실함과 상냥한 마음씨에 고운 미모까지 겹쳐 어디에 가나 항상 인기였고
빨래거리가 넘쳐나 그런 일들을 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도 일감을 나누워 주곤하였다.

당시 나는 7살 짜리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교 갔다 오면 나 보다 열 몇살 정도나 많은 누나가
뻘건 프라스틱 다라이에 가득 수거해 온 빨래를 우리집 우물가에서..

하얀 피부의 호리호리한 허리랑 궁덩짝을 반쯤 내 놓고 앉아서 펑펑 빨래를 해 대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빨래하는 게 보기에도 재미있어 보여 나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주곤 했던 적도 있었고
또 장난기가 발동 되어

찬 우물 물에 손을 담궈 차게하여 누나의 하얀 허리랑 궁둥짝에 쑥 집어 넣어 갑자기 차게하여
깜짝 놀라케기도 하였었다.

그때 마다...
별로 안 깜짝 놀랐지만

'어마야랏~!! 깜딱이얏~!!'
하며 놀란 체 해주고 내 귀를 잡아 끌어 앉혀 놓고

몇달 동안 물 구경 못 한 듯이 꼬질꼬질해 보이는 내 얼굴을 세수 시켜 주면서
고운 눈살을 이뿌게 홀기며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곤 했는데
홀기며 미소짓는 볼에는 보조개가 또렷히 져 참 이쁘다고 생각 되었었다.

누나가 뽀뽀 해 주는게 좋아 또 손을 차게하여 빨래 하는 누나 뒤를 빙빙돌며 기회를 자주 엿볼 때 마다...
내 작전을 다 알아 쳇다는 듯이 웃으며 손에 물을 담아 뿌리기도 했지만 뽀뽀한번 또 당해 볼려고
안 도망가고 그냥 잡혀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집 우물 물을 쓰는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건빵 이라든가 빈대 떡 또는
눈깔사탕 이런 것 들을 먹으라고 부수수 내 놓곤 하였고 나는 그런 것 들을 얻어 먹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상냥하고 이쁘고 마음씨 까지 좋은 그 누나가 무척 좋아 학교만 갔다오면
정숙이 누나를 졸졸 따라 다녔고 혹시라도 누나가 안 보이면 온 동네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그런 이쁜 누나가 마냥 좋아서.. 일부로 아픈 척 하여 나를 업고 학교에 데려다 주게 끔 엄살을 여러번 씩이나 피웠다.
꽤병 인 줄 알면서도 불평없이 둥실둥실 업고가는 누나의 등에서는 시쿰 새콤한 땀 냄새기 났지만
몽실몽실했던 등이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졌다.

비 오는 날 학교가 끝 날 때 쯤이면 우리 반 교실에서 바라보이는 커다란 프라타나스 나무 밑에서
이 쪽을 바라보며 우산을 빙빙돌려 물방울을 팅기며 우아하고 다소곳한 폼으로 나를 기다리기도 하였었다.

그렇게 정겹고 이쁘고 착한 누나는....누나의 부모 보다 더 깊은 신앙심으로 아버지가 땅을 희사하여 설립한
윗 마을 장터 뒷편 산 중턱에 있는 교회에 열심히 예배 드리러 가곤했다.


어머니가 준 낡은 겨울용 쉐타를 여름이 다 오도록 검정색 물감 드린 몸빼 바지에 받쳐 입고 성경책이 든 손가방을 들고
다녔는데도 그 우아한 기품은 의복과는 관계없이 너무도 이뻣다.


누나가 고등학생 때 아직 취학전인 나는 여러번 교회에 따라 다닌 적 있었는데 그 때 마다 누나가 교회 갈 때는 빠지지 말고
꼭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늦잠 자기...뒷 동산에 동굴파기... 등 당시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교회에 잘 따라 다니지 않으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잘 다니겠노라 하며 굳은 약속을 하였지만...
학교 가니까 놀 거리가 훨씬 더 많아 누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내 또래의 아이들을 맡아 성경 교육시키는 간사직을 수행 하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이쁜 건 알아가지고 누나의 집에 많은 아이들이 놀러 오곤 했다.

누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친절해야 하는데 교회의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나는 그것이 싫어 심통이 더럭더럭 내었다.

교회의 아이들도 이쁘고 친절한 누나가 좋았는지 자주 눈나네 집으로 놀러 오곤하였는데
놀러 오는 애들에게 누나를 뺏기고 싶지 않아

누나 네 장독대에 올라가 새총을 쏘아 누나네 집으로 못 들어오게 하였고 심지어는 짱돌을 수북히 모아 놓고는
몰려 오는 아이들을 공산 괴로군으로 생각하며 국군 아저씨가 수류탄 던지 듯 사력을 다해 무조건 던지곤 했다.

이 때 돌에 맞아 깨트린 애들 대갈통만도 해도 여러 통이 되었는데
그렁 때 마다 내 어머니가 대신 미안해 하며 치료비를 물어 주었던 게 기억난다.

뿐만 아니라 동네 총각들이 이쁜 정숙이 누나에게 은근히 수작을 걸곤 하였고
보디가드 처럼 따라 다니는 나에게 눈깔사탕 등 뇌물을 주고 누나에게 연애 편지를 전해 달라는 총각들이 많았다.

그러나 뇌물만 홀딱 빼 먹고 빳빳한 종이의 연애 편지는 딱지를 접거나 잘 비벼 똥 딲는데 사용하고
절대 편지를 전해주지 않았다.

이렇듯 누나에게 관심을 갖고 치근덕 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은 공산 괴뢰군으로 간주하고
누나를 보호하려고 수호신 또는 홍길동으로 변해 다시는 누나에게 못 덤비게 하려고 응징을 가하였다.

(당시 내 또래 중에...손가락으로 눈깔찌르기 비법, 손가락으로 콧구멍 찔러 위로 쳐들기 비법, 콧 딱지 딸려 나온 그 손가락으로 입에 넣고
입 째기의 비법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싸움을 제일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서너살 더 많은 형들도 나를 갈지를 못하였고

쥐 잡는 날 수채구멍에 잠복 했다가 하룻 밤 새 쥐를 7마리나 새총으로 쏴 잡은 실력으로
이장님한테 명사수로 인정받아 공책 7권 받은 관록으로 모두들 나를 홍길동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홍길동이가 누나에게 치근덕 거리는 자들에게 가하는 응징 방법으로는...

새총으로 대가리 겨냥 해 막 쏘기
물에 내 똥을 풀어 물총에 넣고 지나갈 때 물똥 막 쏘기

밤에 집에 찾아가 방문 쪽으로 연탄재 막 던지기
산채로 잡은 쥐 몇마리 풀어 놓고 쌀 다 퍼먹으라 하기 등

만만찮은 전략을 구사해 모든 공산 괴뢰군을 물리치다 보니
한 겨울에도 내 똥물을 뒤집어 쓰고 찬물에 머리 감다가 감기 결려 된통 곤욕을 치룬 사람들이 부지기 수였고
새총에 맞아 실명의 위기에 까지 간 애들도 적지 않았다.
내 어머니에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럴때 마다 씩씩대며 꼬나보며

'우리 누나란 말이얏~!!'
'우리누나 귀찮게하면 다 죽일꺼얏~!!' 하며 겁나게 큰 소리를 질러댔었다.

이렇듯 악동으로 군림하다 보니 동네 어른들도 기가막혀서인지
슬슬 피해 댕기며 직접 나와 대항하려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내 허락 없이는 이쁜 정숙이 누나에게 말도 못 부치게 하고 있던
초등교 2학년 초 어느 주일 날 아침이었다.

비로도 원단에 뽀뿌링 끼가 좀 들어간 땡땡가라 원피스를 깨끗이 새탁하여 늘씬하게 차려 입은 누나가
성격책이 든 가방을 사뿐히 들고 오드리 햅번 보다 더 이쁘게 방긋 웃으며 우리집에 왔다.

작년에 우리집에 두 세달 머믈다가 시집 간 우리 이모가 입었던 땡땡이 물방울 무늬 옷인데
입을 사람도 없고 해서 어머니가 누나에게 주었던 옷이다.

그 때 나는...
간 밤에 요에다 오줌을 싸 어머니한테 안 들킬려고 늦잠 자는 척 하며 누워서 등짝으로 비벼대며 열심히 말리고 있던 중이다.


방에 들어 온 누나를 오줌 말리느라 일어나지도 않고 뭉기적 거리는 자세로 누워서 자는 척 실눈을 뜨고 봤다.
'와~!! 이뿌당~~'


누나가 이쁜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확 달라 보일 정도로 이쁜 줄 몰랐다.
저렇게 이쁜 누나에게 챙피하게 오즘 싼 사실을 누나에게 절대로 알릴수 없었다.

당장 일어나 누나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말리고 있는 중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엉거주츰
'와~~ 이뿌당~~ !!!' 만 실눈을 뜨고 속으로만 연발하고 누워 있었다.

옷이 날개라며...
우리 어머니도 너무 잘 어울리고 멋지다 하셨다.

그런 이쁜 모습의 누나가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약속대로 누나하고 교회 같이 가자~!! ' 고 했다.

초등학교 입 학 후 교회갈 거라고 약속 했었지만...
늦잠자기 친구랑 놀기 등의 이유로 그럴 때 마다 이유를 달고 잘 다니질 않았었는데...

요즘들어 부쩍 이쁜 누나와 친해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누나와 같이 있는 게 좋을 뿐 아니라
내 친구들에게 누나랑 교회에 같이 다닌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여 2학년 부터는 꼭 교회 가기로 하였었다.

늦잠 자느라 세수는 커녕 오줌 말리고 있던 중이였던 것도 잊고 주저함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네... 네네네..~!!!'
교회 같이가욧~~!! 네를 연발하며 단번에 승락했다.

평소 오줌 싼 걸 어머니에게 들킬 경우...기본으로 등짝을 몇번 뚜디려 맞는 것은 물론이고
소금 주기도 지겨우니 제발 오지 말라던 내 친구 영분이네 집에 키를 씌우고 소금 얻어 오라고 했을텐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어머니께서 아무 말 안하시고
새옷을 내주며 누나 따라서 어서 교회에 가라고 하셨다.

(오줌 싸 말리는 사실을 누나 모르게 저의 자존심을 세워 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싸드라도 조금만 싸 표 안나게 얼른 말려 어머니 걱정을 덜어드릴게요~ ㅎㅎ)

누나를 따라 교회에 가려고 새 옷을 입고
포근한 봄 바람이 산들부는 경쾌한 주일 날 산듯한 발걸음으로 나섰다.

전 부터 교회 갈 떄 마다 생각 했던 건데... 교회 가는 길은 우리 학교를 지나 시내를 통과 해 가야 하는데
너무 빙~ 돌아가기 때문에 꽤나 멀다고 느꼈었다.

그날도 시내길로 멀리 돌아 갈려고 생각하니 좀 지겨운 감이 들어 멀리 돌아 가는 것 보다는...
우리집 앞 자그마한 산등선을 따라서 질러 가는 지름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 등선에 오르면...
양팔을 벌려도 끝을 잴 수 없는 검푸른 수평선이 가슴 한가득 펼쳐진 동해 바다가 보이고

누나의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 짚고 삐딱 거리며 가끔 올라 와 밭 매던 널다랗게 펼쳐진
보리밭 옆으로 갖가지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이 피며


이른 봄이면 파란 보리밭 고랑 사이에서 날아 오른 종다리가 높이 떠 지지 대다가

똥 국물을 내 쪽으로 찍 갈겨대곤 했는데 약이 올라 새총이나
돌팔매로 맞출려 했으나 절대 맞추지 못했지만 그게 정겨워 자주 올랏던 언덕길이다.

여름이면 상큼한 바닷내음 머금은 바람이 불어 와 꾀죄죄한 땟국물이 흐르는 땀을 시원스레 말려 주었고

언덕 저 밑으로 보이는 우리집에는 수건을 하얗게 둘러 쓴 우리 엄마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정겨운 모습이 보였고
바다에 하얀 뭉개구름이 뭉굴뭉굴 피어오를 때는 포근함에 마취되어
아무데나 누워 그만 스르르 잠이 들곤 했던 언덕길이었다.

그야말로 주변 경관이 환상적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이 길은

곤충 채집하기..다른 동네 애들과 칼 싸움하기.. 친구들과 바다로 오줌 멀리 갈겨대기 동굴 파 산적생활 하기 등의
놀이를 할 때 이미 내가 개척 해 놓은 길이었다.

교회에 이렇게 멋진 지름길로 가자 하였지만 어린 내가 개척한 언덕 길을 믿을 수가 없어
누나는 망설이며 시내 길로 가자 하였다.

'교회 안 갈거야~!!'

막무가내로 쌩 때를 쓰며 교회 안간다며 엄포를 놓는 내 앞에서 도무지 타협이 어렵자

할 수 없이 그럼 일단은 가 보자꾸나 하여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지름길 인 언덕길로 교회에 가기로 하였다.
가다 보니 가깝고도 너무나 멋진 길이라 누나도 무척 좋아하며

' 이런 길도 있었니??'
'홍길동이는 길 박사야~!!' (당시 내 별명은 홍길동이었다)

바다는 하늘색을 닮기 때문에 오늘 따라 청명한 날씨라 바닷 색갈이 너무도 검 푸르렀고
푸르름이 배인 5월의 들판은 어린 내가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정말 네 말 대로 너무 멋진 지름길이구나~!!' 를
연발하며 누나는 무척 경쾌해 했다.

누구도 몰랐던 내가 개척한 멋진 이 길을 내 실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도 좋았지만 땡땡이 치맛자락을 5월의 산들 봄 바람에 나풀거리며 걷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누나와 교회 가는 길이 너무도 좋게 기억이 남아 지금도 그 상황이 생각 날 때면
나도 모르게 힐힐거리며 추억에 잠겨 보곤 한다.


그 동네에 사는 외삼촌 댁에 갈 적에도 어머니 손 잡고 여러번 간적 있는 교회는 약간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꽤 크게 터를 잡아 널직하니 시원스레 보였고 주변 환경도 아롱다롱한 봄 꽃들로 이뿌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누나의 아버지가 땅을 희사하였다 하였고 교회 본당 까지 멋지게 지어 줄려 하였으나
그 무렵 사고가 나는 바람에 무산되어

우리 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벽돌 공장에서 시멘트 별로 안 넣고 날림으로 막 찍어 내던 보루꾸(시멘트 벽돌)랑
비슷하게 생긴 부슬거리는 벽돌을 사다가 목사님과 함께 교인들이 직접 건물 벽을 쌓았고 싸구료 루삥과 군용 천막으로 임시로

이은 듯 한 지붕은 비가 오면 샐 것 같아 보였다.
장마에 대비해 새로 지붕을 수리 하려는 듯 양철함석 ,기와 ,골판지 등 자재가 수북히 공터에 쌓여 있다.

건물안 본당에는 양때 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 사진이 커다랗게 붙여져 있고 높은 사람이 앉을 것 같은
멋진 의자 여러개와 우리 학교의 내 책상의 의자랑 똑 같이 생긴 의자가 줄을 반듯하게 잘 맞춰져 있었다.

허름한 건물과는 달리 실내는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지고
60년대에 비교적 진보 된 개척교회의 모습을 한 건물이었다.

30명도 체 안되 보이는 사람들 앞에

누나네 집에서 가끔 보았던 목사님이 다정한 표정으로 등장하셨다.

목사님의 설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재미가 하나도 없고 지루하여 이쁜 누나의 손을 잡고
딴데는 잘 안 쳐다 보고 진지하게 목사님 설교를 듣는 누나만 쳐다 보았다.

누나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눈을 감고 소원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하였다.
누나가 시키는대로 눈을 감고 기도하는 폼을 잡았지만 별로 기도 할 게 없어

실눈을 떠가며 누나의 기도 모습을 훔쳐 보며
기도 모습을 흉내 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교회를 간 후... 주일 날 아침이면 늦잠꾸러기가 안 깨워도 벌떡벌떡 일어나
일단 오줌 쌌나 안 쌌나를 확인하고 안 쌌을 경우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꼬박 꼬박 누나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가끔 오줌은 쌌지만 그때 마다 기지를 발휘해 잘 자고 있는 동생을 내 요에다 굴려 대신 말리게 하였으며
동생도 오줌 싼 날이면 우선 내꺼 부터 말릴려고 내 요로 굴려 놓곤 하였다.

두 형제가 번갈아 가며 용감하게 소금 얻으로 다니니까 어떤 집에는 소금 주기 진짜 지겨운지..
(소금 정말 없음) 이라고 쓰고 그 밑에 우리 형제 이름과 함께 누구누구 정말 오지마~!! 라고 써 붙인 집도 있었다.

얼마나 챙피 했던지...같이 오줌 싼 날이면 사태 파악 잘 못하는 마름 버짐 뒤 범벅인 내 동생을 너 까지 싸면 어떻하나? 하며 걷어 차곤 했는데...
그 후 (소금 정말 없음) 의 글귀가 어머니의 부탁으로 써 놓은것을 알고 학교 가기를 거부하고 울어댔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몇달 동안 여름방학이 지나도록 누나랑 같이 교회에 다니다 보니..
이제는 내가 먼저 일어나 누나네 집에 먼저 가 교회 가자고 설쳐 대기도 했다.

말썽만 피우는 개구장이로 소문나 동네 어른들 마다 눈살을 찌프리곤 했는데
교회 다니고 부터는 동네 어른들께 인사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 하여 모두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어머니도 아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숙제가 많이 밀렸어도 교회부터 가라고 떠다밀곤 하였고
그렇게 공식적으로 누나랑 손잡고 같이 교회 다니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기도 할 때 누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길게 기도를 하는 편이었는데..
그때 마다 누나의 얼굴이 근엄하고 진지하게 굳어져

평소의 밝고 이쁜 누나 얼굴 같지 않고 딴 사람 같아 보여
무서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누나가 가르쳐 준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빨리 기도를 끝내고 누나의 얼굴를 도로 이쁘게 펴 주세요. ' 라고..

기도가 끝나 다시 평온해진 누나를 보며 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구나 하고 생각 하였고
' 누나?? 기도 할 때 마다 왜? 무섭게 인상이 변하하는 거야?? ' 하고 누나에게 물어 보았더니

살포시 웃으며 내 손을 꼭 잡고
'기도 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뵙고 있는 중이였다' 고 했다.

의미를 모를 누나의 말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 마다 늘 야단을 맞는구나 하고 생각하였고
저리 맘씨 곱고 이쁜 누나가 뭘 잘 못해서 하나님한테 혼나는 거지?

무엇을 잘못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였고
내가 대신 혼나면 안될까를 깊게 생각하다가 예배 시간 중에 그냥 잠에 빠지곤도 했다.

예배가 끝나도록 자고 있자..깨우기가 안스러워 누나가 업고 올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날이면 내가 개척한 산등선 길 보다 멀드라도 시냇길로 오곤 했다.

등에 업혀 올 때 잠이 깨었어도 누나의 등이 몰캉 몰캉한게 어찌나 포근한지 내리고 싶지도 않았고
향내 나는 누나의 긴 속 머리칼을 돌돌말아 입에 물고는 계속 자는 척 하였다.

내가 깨어난 것을 알고도 모른체 하며
누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내리라 하지 않고 집에 까지 업고 오곤 하였다.

집에 와서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자주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맨날 저를 업고 오는 우리 누나를 만나실 때 마다 야단만 치지 마시고 이뿌게 봐주세요' 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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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 해 크리스마스가 지나자 마자 강풍과 함께 2~3일 정도 큰 눈이 내렸다.
내 키 보다 높게 쌓일 만큼 엄청난 눈이었다.

어른들도 처음 보는 큰 눈이라고 모두들 엄청난 눈에 놀라 했으며
제설작업을 감히 엄두도 못내고 겨우 가까운 이웃과 통하는 길만 낼 뿐이었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생전 처음보는 많은 눈이 신기해 하며 제일 먼저 누나네 집에 가는 길을
재미있어 하며 눈을 치웠다.

읍사무소에서 우선 큰 길에만 제설작업을 하여 차는 겨우 다닐 수 있었지만 왠만한 도로는
손도 못댄 체 발이 묶여있었다.

눈이 많이 온 다음 날이 주일이었지만 누나는 변함없이 교회에 가자 하였고
눈이 많이 온 관계로 지름길을 포기하고 한참 멀드라도 시내를 통과하는 큰 길로 누나와 둘이 걸어서 교회에 갔다.

누나가 기도 할 떄 무서워 지는것만 뺴 놓고 눈길을 누나와 같이 교회에 간다는게 너무 좋아
엎어지고 자빠지고 눈 쌈하고 눈 사진찍고 디게도 재미나 하는 나를 보고 누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큰 눈이 내리자 새벽부터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교회 길을 다 치운 덕에
큰 길에서 약간 언덕에 있는 교회까지는 쉽게 교회에 갈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먼 시내 길로 돌아 갈려니 다리도 아프고 하여 꽤가 발동하여
누나에게 지름길인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로 가자고 졸랐다.

누나는..눈이 많아 길을 분간 할 수 없으니 안된다고 하였다.
눈이 하늘 끝까지 와도 내가 개척한 그 길은 눈감고 갈수 있으니 나만 따라오라고 방방 뛰며 때를 썼다.

안되는 줄 알지만 마음씨 고운 누나는 필요 이상 보채는 내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하며
할 수 없이 조심해서 가 보자고 하였다.

막무가내 식으로 보채는 내 고집을 일단은 달래 놓은 후 얼마 가지도 못하여 포기하게 될거니까
그때 다시 큰 길로 가려고 했으리라~

우리가 가야하는 산등선 길 쪽으로는 교회 바로 뒷편에 조그마한 마을을 통과해 가야 하는데
그 마을 까지는 동네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로 인해 제설작업이 잘 되어 있어

마을이 끝나는 곳 까지는 별 무리없이 갈 수가 있었다.
동네가 끝나자 천지가 새 하얀 눈밭이 펼쳐지자 나는 마냥 신이나서 내 세상인 양 흰눈을 가르며 의기양양 앞장을 섰다.

마을을 통과 하자 마자 어떤 곳은 발목도 채 안되게 얕게 눈이 쌓였으나
또 어떤 곳은 내 허리 만큼 쌓여 있었고 또 어떤 곳은 내 키보다 몇배나 높아보였다.

폭설이 내릴 때 바람도 몹시 불어 높은 지면에는 눈이 쌓일 새도 없이
바람에 다 날려 낮은 지면 쪽으로 몰려 쌓였다.

그런 현상으로 맨 땅이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또 어떤 곳은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여 눈을 헤치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겨우 몇 미터 전진한 후 뒤 돌아 보니 누나는 아예 따라 오지도 않고 내가 곧 포기 할 것으로
생각하여 저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가 보고 있으니 더 신이나 몇 발자국 더 전진 해 내 키보다 훨씬 더 깊은 눈 속에 파뭍혀 보니
희뿌연 하늘만 보일 뿐 더 전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것 봐라 하며 고소한 미소를 지으며 업어 줄테니 그만 돌아가지고 하였다.
누나에게 지기 싫어 울상이 된 나는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게 없어져..

깊은 낭떨어지 밑에 커다란 웅덩이에 바람에 날린 눈이 다 몰려 쌓아져 평지처럼 평평해 진 곳을 모르고
평지인 줄 알고 한발 더 전진 하다가 그만 깊고 깊은 눈속에 빠져 버렸다.

눈 속에 꺼꾸로 쳐박혀 한참 동안을 쑥~ 내려가다 멈추었는데 팔이 꺽이고 다리가 뒤 틀린 상태로
그대로 멈춰 화석이 된 듯 꼼짝 할 수가 없었고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방향도 잡을 수가 없었다.

눈 속은 앞이 안보이게 어두컴컴 했다.


빠져 나오려고 아무 방향이고 눈속을 허우적 거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정숙이 누나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먼곳에서 들리는 듯 했다.


나도 누나를 막 불러댔다.
'누나야~~!!!?? 정숙이 누나야?? '

대답도 없다.
이제 정숙이 누나가 부르는 소리도 안들렸다.

누나와 단절 되었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컹났다.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칠때 마다 뿌드득 거리며 깊이 더 빠져 들어갔다.
전기줄 공사 아저씨들이 우리집 앞에 임시로 자빠트려 놓은 나무 전봇대 길이 만큼 빠진것 같다.

눈이 내 입속으로 막 들어왔다.
숨이 막히는 듯 했다.

무서움이 급습해 왔다.
움직이면 더 깊이 빠진다는 걸 알고 꼼짝 않고 있었다.

아이고 나 이제 죽나 보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엄마~!!!'
목이 터져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누나야~!! 누나냐~!!
핏대를 있는대로 내며 불러보았지만...입속에서만 맴도는 듯 했다.

정숙이 누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주신다 했던 말이 그 상황에 생각 났다.
그러나...천사같은 누나도 잘못 한 일로 무서운 하나님한테 야단 맞곤 했는데

잘못 한게 더 많은 나는 누나 보다 더 혼 날것 같았다.
하나님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의기양양 앞장서며 눈을 헤치다 온 몸에 땀이 배이게 후꾼거렸는데 이제는..
너무 춥다.
곧 얼어 죽을거라 생각 했다.

누나를 따라 다닌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의미도 잘 모르는 내가 너무 추워서
그저 살고 싶어서 본능적으로 하나님 살려주세요를 덜덜 떨며 가늘게 외쳤다.

누나가 기도 할 떄마다 무섭게 변하던 얼굴을 도로 이쁘게 펴 달라고 몇번 기도 한 후..
한번도 안해 봤던 기도를 무서운 하나님 아버지한테 가늘게 떨며 했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저를 한번만 살려 주세요? 네??'
'너무 추워요..'

'내 동생도 안 때리고 누나 말도 앞으론 잘 들을 거니까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네??'
하고 몇번이고 살려 달라고 기도처럼 외쳐댔다.

극한 상황이 되니 무의식적으로 '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

눈 속은 빛이 차단되어 어두컴컴하였고 희뿌연 눈만 보였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이게 깜깜해 지더니 무슨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말 안듣는 애는 혼나야 돼~!! 하며...
음산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악~!!!'
'창골이가 왔다.'

진달래 꽃 따러 산에 가는 애들이 있으면 잡아서 창자 빼 먹고 살며 꺼먼 털이 온 몸에 난 마귀 처럼
무섭게 생긴 시멘트 화물차 다니는 굴다리 밑에서 산다는 그 창골이의 목소리였다.

벌써 10명도 더 창자 빼 잡아 먹었다고 소문 난 그 창골이가
내 창자를 빼 먹을려고 나타난 것이다.

아이고~!! 이제는 진짜로 죽었구나 하며 두 손으로 내 배를 꼭 가렸다.
너무 무서워 눈을 꼭 감고 안들키게 몸을 감추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뿌드득 거리며 더 눈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갑자기 누나의 목소리가 어디서 희미하게 들리는 듯 했다.
너무 반가웠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대답하면 먼저 창골이 한테 들켜 창자 빼내 잡아 먹힐 것 같아
아무 소리도 못지르고 속으로 끽끽 대기만 했다.

아이고 추워라~!!
창골이 한테 잡아 먹히기도 전에 얼어 죽을 것 만 같았다.

무서움과 추위에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
잠이 스르르 온다.

창골이가 나를 찾은 듯 하다.
너무 무섭다.

잠이 몰아 쳐 잡아 먹을려면 먹어라 하며
자포자기가 되어 잠이 들었다. 아니..정신을 잃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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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주변이 환 하게 밝아 지더니 누나를 만날 떄 마다 혼내시는 무서운 하나님이 나타 나셨다.
그러나 창골이 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아 눈을 뜨고 바라 볼 수 없었다.

하나님과 창골이가 내 배를 막 더듬으면서
창자를 꺼내려는 듯 했다.

아이고~!! 이제는 둘이서 날 다 뜯어 먹을라 하나 보다 하고
엄마야~!! 엄마야~~!! 를 속으로 부르며 너무나 겁에 질려 정신을 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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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꽤 오래 이러고 있었는데 안 잡아 먹는 게 이상했다.
배를 쓱 만져 보니 피가 하나도 안 났다.

이상하게도 점점 하나님이 안 무서워졌고
맘 좋은 분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누나를 만날 때는 꾸중을 주시었지만 일단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누나의 얼굴이 더 활짝 웃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좋은 하나님일 거라 생각하였다.

창자 뺴 먹고 사는 창골이를 물리치시고
왠지 나를 살려 꼭 주실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
기도를 하면 소원을 들어 주신다는 누나의 말이 또 생각이났다.


'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하나님 제발 좀 저를 살려주세요~!! 네?? '
' 아는 애들 고뭇줄 끊어 먹은 거 이제부터는 모르는 애들 꺼만 끊어 먹을게요..네?? '

' 내 친구 영분이 치마 들추기 이제 진짜로 안 할게요..네?? '
' 내 친구 기철이네 장독대에 똥 네번 싼거 제가 싼건데요 이제 안 쌀게요..네??

' 숙제도 잘하고 발도 매일 씻고 이불에 오줌도 안 쌀게요~..네?
' 하나님 추워 죽겠어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 엉~엉~!!!

그동안에 잘못 했다고 생각 되는 몇가지가 얼른 떠올라
더욱 애절하게 반복하며 속으로 기도를 했다.

너무 춥다.
숨도 막힐 것 같다.

엄마가 보고싶다.
정숙이 누나도 보고싶다.

잠이 온다.
내 배를 잡고 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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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껴 안는 듯했다.
하나님이 창골이를 물리치시고 나를 안고 살려 주시는 듯 했다.

하나님이 안아주시니 우리반 교실의 난로 처럼 참 따뜻했다.
눈을 뜨고 하나님을 보고 싶었지만 죽은 척 해야 마저 살려 주실것 같아 눈을 꼭 감고 안들키게 숨도 살살 쉬었다.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눈을 뜨고 하나님을 너무도 보고 싶었지만 살은 게 탄로나면 안살려 주실것 같아 계속 죽은 척 했다.

얼어 죽을 것 같은 내가 너무 불쌍해
하나님이 용서해 주셔서 창골이를 물리치시고 우리 반 교실의 난로 불을 갖고 오신거라 생각했다.

아~!! 따뜻하다.
' 하나님 아버지 난로를 갖고 오셔서 저를 살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

하나님은 너무 멋지 분이라고 생각 했다.
하나님 말씀 잘 듣는 어린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또...잠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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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환하게 밝혀진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처음 보는 세상에 온 것 같았다.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님 집에 데리고 온 듯 했다.

횟불 뭉치 여러개와 손전등불 몇개가 외삼촌과 동네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다.
우리는 밧줄로 동여 매져 허공으로 달아 올려졌고 미리 준비된 가마니 위에 시체처럼 뉘어졌다.


이불 포대기와 거죽대기를 덮은 후 긴급 후송이 되었다.

정숙이 누나와 같이 교회에 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눈이 많이 와 교회 근처에 사는
외삼촌집에서 자고 오겠지 생각한 어머니는 그래도 마음이 편치않아 수소문 해 보니..

예배 마치고 집에 간다며 둘이서 언덕길로 갔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주변에 사는 외삼촌과 동네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로 수색대를 조직해 발자국을 쫒다가

몇 발짝 못가 크레파스에 빠진 걸 알고 긴급 구조에 나섰으나 워낙 깊이 빠진터라 구조 장비도 열악하여
경찰서와 소방서의 도움으로 그날 밤 늦게서야 겨우 구조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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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보니
내 옆에는 정숙이 누나가 정신을 잃은체 여기저기 붕대를 딩딩 감고 누워 있었고

나의 어머니와 정숙이 누나의 어머니가
걱정스럽고 슬픈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눈속에 빠진 후 급한 나머지 정숙이 누나가 나를 구하려고 앞 뒤 안가리고
눈구덩이 속에 뛰어 내려 허우적 거리며 한참을 찾다가

겨우 정신을 잃을까 말까한 나를 발견하였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동사를 염려하여 눈 속에서의 사투 끝에 누나가 입고 있던 초라한 외투를 벗어

내 작은 몸을 감싸주었을 뿐 아니라 낡은 쉐타까지 벗어 내 얼굴과 목에 감아주었고
입은 옷이 별로 없게 된 누나는 눈속에서 뭘 어쩌지도 못하고 구조 될 떄 까지 그냥 나를 꼭 안고만 있었다.

덕분에 나는 잠시 잠시 몇번 의식을 잃었을 뿐 별로 다친 곳 없이 상태가 좋았다.
오히려 따뜻한 누나의 체온에 포근함 마져 느껴져 구조되는 긴긴 몇시간 동안 몇번이고

잠이 스르르 들곤 했었는데 그 상황이 하나님께서 창골이를 물리치시고 난로를 가지고 오셨지만
살은 체 하면 안될 것 같아 절대로 눈을 뜨지 않고 죽은체 했던 때 인것 같다.

따뜻한 난로 같은 누나의 품에 안겨 잠이 들때
체온이 나에게 다 뺏긴 누나는 의식을 잃은 던 모양이었다.

구조 될 때 당시 누나는 보온이 될만한 옷을 다 벗어 나에게 둘둘 말아 주었기 떄문에 별로 입은 옷이 없어
동사 직전 상태였으며 컴컴한 눈속에서 나를 찾으려고 허우적 거리다가 손가락 두개가 부러졌다.


지옥처럼 엉망진창 같은 눈속 어디엔가 쳐박혀 있던 나를 찾으려고 컴컴한 눈속을 헤치다가 바위나 돌맹이 나뭇가지 등에
마구 부딪쳐 왼손 엄지와 중지 손가락이 부러져 뒤로 재쳐쳐 비틀어진 것도 모르고 오로지 나를 구할려는 생각만 앞셨다.

나를 발견하자 손가락 부러진 것도 모르고
옷을 벗어 나에게 입혀 줬던 것이다.

부러진 손가락 마디가 뒤틀려 꺽인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 거리다 보니 신경이 다 끊어진 것은 물론
두 손가락의 뼈가 손에서 완전히 분리 되어 겨우 가죽만 붙어 있어 두개의 손가락이 너덜거렸다.


동사 직전 까지 가는 상황에서 얼어 버려 절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여
끝내 손가락 두개를 잘라내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이를 악 다물었는지 턱관절도 뒤 퉁굴려져 잇몸 전체가 들떠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거니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또 허우적거리는 악몽에 시달려 몇달을 괴로워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가락이 없어진 누나의 횡~~한 손을 볼 때 마다...
나도 눈속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곤했다.

어느날 누나가...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그랬었지.
그 생각이 나서 눈속에서 얼어 죽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 살려 달라고 기도 했었지.

진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도를 들어 주신거라고 생각 했다.
진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나를 보내 나를 살리신거라 생각 했다.



' 하나님께서 저를 살리시려고 누나를 보내 살리셨지만 대신 누나는 병신이 되었잖아요 '
' 하나님 아버지..우리 누나 손가락 도로 부쳐주세요.'

엉엉 울며 기도하다가 자는 나를 안고 누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퇴원 후.. 누나는 누나네의 썰렁한 집 보다는 내 어머니의 권유로 비교적 따뜻하고 편안한
우리집에서 겨울방학 내내 머믈며 완쾌 되도록 내 어머니의 간호와 보살핌을 극진히 받았다.

아들을 살리다 저렇게 된 누나에 대해 어머니는 누구 보다도 가슴 아파 했으며
무엇으로 보상하리..하면서 어머니도 눈물 흘리며 애석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누나는...흉하게 불구가 된 왼손을 바라보며 가끔 한숨을 짓곤 했지만...
나를 가만히 안고서는

' 네가 아무데고 안다친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 누나는 손가락보다 더한 것이 잘렸어도 네가 온전한 것에 대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른다.' ...며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더우기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예전의 그 맑고 예쁜 미소로 더 다정하게 대해 주었으며

어머니에게도 내가 안 다친 게 천만 다행이라고 하면서
이 사고는 누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어머니가 외삼촌을 시켜 구조 하지 않았다면

둘다 죽었을 거라며 생명을 살리신 건 어머니라며 오히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내 어머니를 위로하였다.
그런 누나를 볼 떄 마다 우리집 식구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누나를 보고 마음씨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라 했다. 누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셔서 우리가 살았으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며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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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았던 긴긴 겨울이 지나 봄이 왔지만... 아직 완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겠다는
누나를 어머니의 강력한 거부로 내 공부를 봐주며 우리집에 계속 머믈러 있게 했다.

사고가 나기 전 부터 평소에 누나는 우리집에 매일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는 내 공부를 봐주며 틈틈히 성경책을
읽었으며 나에게도 읽어주며 재미나게 성경 얘기를 해주곤 했었는데...

그런데 사고가 있었던 날 눈 속에서 조그만 손가방을 잃어버렸는데 가방속에는
반들반들 이쁘게 손때 묻은 누나의 성경책이 들어있어 함께 눈속 어딘가에 잃어버렸다.

어린 마음에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보답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누나에게 그 성경책을 찾아주고 싶었다.
눈이 엄청 많이 온 탓에 3학년으로 올라 간지 두달이 지나서야 겨우 눈이 다 녹게되자

손 가방을 찾아 줄려고 아무도 모르게 교회 뒷 산 언덕 구덩이에 몇번이나 갔었지만
눈 속에 빠졌던 장소는 지옥처럼 깊어 보여 찾을 수가 없었다.

크게 실망을 했지만 눈속에서 불쌍하게 얼어 죽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누나를 보내 살리신 것인데...
저를 살린 누나의 은공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누나에게 꼭 성경책을 구해 주고 싶었다.
손 가방은 이미 찾을 수 없게 되었고 다른 방법으로 성경책을 구해야만 했다.

두꺼운 성경책이라 되게 비쌀거라 생각 했다.
작년 여름에 이미 배가 째어진 돼지 저금통에는 돈이 모일 새도 없이


수시로 꺼내 눈깔사탕, 뽑기등을 사먹은 터라 돈이 많이 들어 있을 턱이 없었다.
어제 마른 버짐 많이 핀 내동생이 맛나게 물고 다녔던 울륭도 호박엿 가락이 생각났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흔들어 보니 생각 보다 훨씬 적은
일환 짜리 동전 두어개가 달랑거렸다.

동전 빼 내는 방법을 동생에게 가르쳐 줬던 것을 후회하며 침을 흘리고 잘 자고있는
내 동생을 원망하고 발길질을 해 보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설날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새뱃돈 벌려면 멀었고
성경책을 살 자금을 마련 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나는...
늘~ 양심에 가책을 갖고 평생 살아야 하는 잊혀지지 않는 실수를 하고 만다.

숙제를 낼 떄 마다 거의 하지 않아서 교무실 청소를 단골로 한 적이 있었는데...
교감선생님 책상 책꽂이에 까맣게 번들거리는 두꺼운 성경책을 본 기억을 더듬어 내었다.

숙제를 일부러 안해 가 교감선생님 책상에 있는 성경책을 훔쳐
누나에게 선물하기로 마음 먹었다.

몇일전 만 해도 지겹게 숙제를 내었었는데 요즘들어 이상하게 숙제를 잘 안 내주어
교감실에 갈 일이 도대체 생기질 않았다.담임 선생님한테 숙제를 왜 안내냐고 따지기도 하였는데..

' 청소 대장인 네가 왠일이니?? 평소에 숙제를 잘 할 것이지 쯔쯔~' 하며
선생님한테 괴상한 놈으로 취급 받아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워낙 융통성이 없어 그런지 성경책을 구할 기미가 안보이는 가운데서도
기회만 엿보다가 어느새 3학년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방학이 되면 안되니까 공부는 뒷전이고 온통 성경책을 훔치는 일 밖에 다른 생각은 나질 않았다.
초등 3학년 짜리의 치밀한 작전을 짤수 밖에 없었다.

온화하게 생긴 교감선생님은 양호실 선생님까지 겸하고 있어 약간 아픈 걸 가지고
공부하기 싫어 꽤병 내어 많이 아픈척 하는 애들이 있으면 비좁은 양호실 보다는

교감선생님 방 책상 바로 옆에 간이 침대를 두고 엄살피는 애들 누워 있게 하는 것을 가끔 본 적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멋진 기발한 생각을 해 내었다.
애들 처럼 나도 나이롱 환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디가 아프다 해야 안들키고 진짜 아픈사람 취급할까? 를 고민하다가
제작년에 우리집에서 몇달 지내다가 시집 간 우리 이모가 생리통 때문에 무진장 아퍼하며

인상 찌그리고 배가 아퍼 절절매던게 생각이 났다.
생리통이 아프다고 하면 무진장 아플것으로 알고 선생님도 깜짝 놀라 얼른 양호실로 데려 갈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발한 생각이라고 스스로 흐믓했다.

생리통이 아프다며 교실을 딩구는 엄청난 나의 꽤병에 다들 실소 했지만...
오죽 공부하기 싫으면 저러겠냐는 선생님의 동정심이 유발이 되어 잠시 쉬라는 뜻으로

드디어 갈망하던 교감선생님 책상 옆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 후 죽~ 내 별명이 생리통이 되었다.ㅋ~)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공부 시간에 만화 책 보다 압수 당해 보관된 신동우 화백의 홍길동전 만화책 한권과
유난히 눈에 띄게 반들거리는 성경책을 책보에 싸 훔치는데 성공했다.

치밀한 계획아래 40년이 넘게 들키지 않은 완전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성경책을~~

그 때 차라리 들켜 벌을 서든가 매를 맞았다면 긴긴 세월동안 성경책 훔친 죄로
이렇게 괴로워 하진 않았을텐데...

(늘 부담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사건을..나중에라도 모교에 성경책 100권과 만화책 1,000권
정도를 기부하면 죄 값을 치룰 것이라고 홀가분하게 생각 하였지만...아직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방과 후..성경책을 구한 기쁜 마음으로 한 걸음에 달려 와 아직까지 우리집에 요양차 머물고 있는
정숙이 누나에게...

' 누나~!!! 이 성경책 누나 가져~!! '

새 책이나 다름 없는 까만 성경책을 보자 마자 대번에 정상적으로 구입 해 온게 아닌 걸 눈치 채고
이쁜 얼굴을 찡그리며 노기띈 표정으로

'누가 너 보고 성경책 구해달랬어??'
'목사님께서 문병오셔 이미 성경책을 선물 받았기 떄문에 이제는 필요 없어~!!'

라는 매몰찬 말과 여형사 뺨치게 성경책의 출처를 추궁하는데...
할 말이 없어져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자꾸 케 물으니 갑자기 누나가 미워졌다.

노심초사..몇달 동안 심사숙고하여 성경책을 어렵게 구했는데...
누나가 기뻐 할 줄 알았었는데...

이게 아니 잖아
이게 아니 자나..ㅋ~

고맙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 해야 각본이 맞는건데...
냉냉한 누나의 눈빛이 서럽게도 미워져서 나는 성경책을 들고 뛰쳐 나와

누나랑 교회 갈 때 같이 갔던 바다가 바라보이는 지름길인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울면서 뛰쳐 나가는 것을 보고 누나가 당황하여 나를 부르며 쫒아 왔다.


오기로 누나가 못 따라오게 더 힘차게 언덕 위로 뛰어 올랐다.
언덕 밑 저만치서 누나가 힘들어 하며 뒤따라 오는 걸 보았다.

잠시 수평선이 분명히 그어진 아름다운 검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누나랑 처음 교회 가는 날 이쁜 누나와 같이 교회 가는 너무도 기분 좋았던 그날을 생각했다.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다 이해하고 용서해 줄 것 같은 누나에게 사실대로 얘기하고 성경책을 교감선생님 책상에 도로 갖다 둘려고 했다.

그런데...
몸도 아직 성치 않은 누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악작같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니
안스러운 마음에 갑자기 더 심통이 났다.
그럴 마음을 접고

'올라 오지마~!!'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오지말라는 소리를 듣고도 누나는 내 걱정으로 힘들게 오르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누나가 얄미워졌다.

'이제 다 필요 없어~!!'
'누나도 필요 없단 말이얏~!!'

악에 받쳐
그만...이성을 잃어버렸다.

성경책을 언덕 밑 낭떨어지인 바다로 떨어져 없어지라고 힘껏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반대 편 언덕길로 뒤도 안 돌아 보고 손살같이 달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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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 뭔지 몰라도 전 같지 않은 냉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 때문이 아니라 어느 정도 활동 할 수 있기에 몇일 뒤 누나는 집으로 돌아 갔다.

누나는 전 처럼 우리집에 매일 와서는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성경책에 대한 출처와 언덕에 던져버린 것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다.

아마도...언덕에서 성격책이 바다로 떨어져 없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성경책을 찾았으면 주인에게 돌려 주라고 했었을 것 같다.

우리집에 와서는 잘린 부위가 뻘겋게 된 손가락 두개가 없는 보기 흉한 손으로 삐져있는 내 얼굴을
더욱 다정한 모습으로 쓰다듬으면서 전 처럼 나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나는 ..
'바보, 멍텅구리, 손가락 병신' 하며...쌀쌀맞게 놀려대기만 했다.

그럴때 마다 누나는 조금도 화를 내지않고 오히려 누나가 잘못 했다며 이번 주일에 교회 갈때는
업어 줄테니 꼭 교회에 같이 가자며 다독거려 줬다.

천사같이 이쁜 누나가 나한테 절절매며 따라 다니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아 일부로 계속 시쿤둥 거리기만
하였는데 지켜보던 어머니께서 사내 놈이 삐짐도 오래도 간다 하며 빈정거리기도 하셨다.

그런 내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항상 미소 띄며 내 투정을 다 받아주는 누나가 정말 좋아
아무리 어렸던 당시의 나였지만...

엄청난 눈에 지름길인 언덕길로 가자고 무모하게 쌩 때거지를 쓰며 졸랐던
한심한 나를 살리려고 손가락 불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만은 항상 헌식적이었던

이런 누나에게
나는..평생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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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 꾀병을 내어 교감선생님 책상에서 성경책을 훔쳤던 날..
누나가 받아 주지 않자 삐져서 언덕에 올라 성경책을 바다로 던져 버렸던 바로 그날 밤.

어린 나이지만 성경책을 훔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감히 귀중한 성경책을
바다로 던져 버린 두가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죽을 죄를 지었다고 종일토록 고민하다가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다 생각하여 그날 밤 건전지가 거의 달아 뻘겋게 불이 들어오는 손전등을 가지고 언덕에 올랐다.
여기저기 있을만한 데를 희미한 손전등을 비추며 성경책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저 멀리 깜깜한 바다에는 파도가 높은 날이어서 그런지 오징어 잡이 배들의 불빛이
파도 타기를 하며 보였다 안보였다 숨박꼭질 하면서 나를 놀려 대는것 같았다.

서늘한 여름 밤 바닷 바람은 경쾌 했지만...찹찹한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성경책을 찾긴 꼭 찾아야 하는데 찾을 기미도 안보였고

바람이 휙~!! 불떄마다 시커먼 풀숲에서 뭐가 막 튀어나 올것 같이 무서웠다.
저절로 눈물이 막 흘렀다.

얼마전에 눈속에 빠져 얼어 죽을려고 할 때에는 모르고 빠졌기 떄문에
하나님께서 불쌍해서 살려주셨는데 이번에는 성경책을 일부로 던져버린 놈은 나뿐 놈 중에 제일 나뿐 놈이라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서 해 주실것 같지 않았다.
나는 누나가 하던 기도 모습이 생각나 누나처럼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무서워 죽겠으니 집에가서 그냥 자고 내일 낮에 찾으면 안되나요?'
'하나님 아버지 내 친구도 데려와 같이 찾을게요 오늘만 봐주세요. 네?? '

나 보다 더 잘 씻지 않아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뒷통수가 옆으로 삐딱하게 형성되어 이상하게 생겼지만 내 말을 잘 듣는
친구 녀석이 얼른 생각나 그놈과 내일 같이 오리라는 그런 생각에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리 허락 한 것으로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해 졌다.

다음 날 학교갔다 오자마자 친구녀석에게 눈깔사탕 한개로 꼬여 유혹했지만 사탕만 받아 먹고 안 따라왔다.
괘씸하고 의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나 혼자 언덕에 올라가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엮시 찾을 수가 없었다.

성경책이 떨어진 곳이 바로 낭떨어지기 때문에 밑으로 날라가 바다로 떨어졌을 것 같았고
행여 안떨어져 나무 가지 같은 풀숲에 걸쳐있드라도 어린 내가 접근해 찾기에는 매우 위험했다.

갑자기 막막해져 또 눈물이 났다.
성경책이 떨어졌을 것 같은 낭떨어지 밑 해변가에는 하얀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왔다.

(훗날 빠삐용이란 영화를 보고 이 한심했던 상황을 생각했던 일이 있다)
나는 또 다시 누나가 한 것 처럼 슬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책을 도저히 못찾겠어요.'
'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성경책 1000권 사 드리면 안되나요?'

성경책 훔친 날 내가 다녔던 학교에 미안한 마음으로 100권을 기부할 것을 맹세 하였지만...
성경책을 던져버린 엄청난 소행에 대해서는 크게 미안한 마음으로 열배나 많은 성경책 1,000권을 하나님께 사드린다고 기도했다.

성경책 1,000권을 사 드릴것으로 마음 먹고 발길을 돌리니
홀가분해진 나의 마음을 비 웃으며 약 올리려는 듯 파도는 끊임없이 내게로 덤비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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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이 누나는 손가락이 잘린 후 문밖 출입이 현저히 줄어 들었고 예전 처럼 일거리도
많이 못 얻을 뿐더러 손가락이 없으니 편물도 더 배울 수 없었고
궁뎅이 씰룩거리며 팡팡 잘 해대던 빨래도
손가락 때문에 잘 하지 못하자 자주 아픈 노 부모의 약값도 제대로 댈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내 어머니의 많은 배려로 인하여
세 식구 생계는 겨우 겨우 꾸려 갈 수 있었다.

한창 혼기에 든 누나는 손가락 없는 장애임에도 불구하고 성실함과 이쁘장한 얼굴 때문인지 총각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많은 총각들이 직 간접적으로 누나에게 구혼을 요청했지만...누구에게든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누나가 다니는 교회 근처에 사는 이명석이라는 총각에게 마음을 둔 듯 하다.
그 형은 누나 보다 8살 정도 나이가 많은 노총각이었고 6.25때 양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기거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다.
비록 학력은 국졸 박에 되지 않았으나 누나가 다니는 교회에서 누나에게 뒤지지 않은 신앙심으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교회가 그 형이 다 가꾼 것이라 했다.
나름대로 성실히 돈을 모아 논 밭도 많이 있고 또...자그마한 머구리 배 몇 척을 구입하여 임대를 놓았고
(머구리 배 : 잠수부가 바다에 잠수하면 수동으로 펌프질 하여 잠수복에 연결된 호수를 통해
공기를 주입시켜 해산물을 췌취하는 2~3톤 정도 나가는 배)
그 중 한척은 직접 운영하여 인근 가까운 바다로 나가 미역 다시마 해삼 멍게등 각종 해산물을 따서
어판장에 파는 직업을 갖고있다.
싱싱한 수산물이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어 잡히는 대로 비싼 값으로 수출 되곤하여 짭짤한 수익을
많이 올려 1년 뒤에는 배수량 30톤 쯤 되는 제법 큰 오징어 배 두척을 동시에 건조 할 거라는 커다란 계획도 갖고 있었다.
나이 답지않게 순박하고 부끄러움도 많아 누나에게 쓴 연애편지를 직접 전하지 못하고 나보고 전해 달라며
당시에는 귀 했던 오일펜(볼펜)과 과자등을 사주며 부탁도 여러번 했었는데..
그 형에게도 누나를 뺏긴다는 심통스러운 생각에 편지를 안 전해 준적도 있었고 그 내용도 읽어 보았는데...
글씨가 너무 형편없었고 내용 또한 누나가 뻑~~!! 넘어 갈만한 게 없었다.
심성은 누나 못지 않게 착하여 어느 누구의 어려운 부탁이라도 다 들어 주었으며
하나님을 성실히 믿는 순박한 총각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한 성실함에 누나도 싫지 않게 마음이 움직여 졌는지
누나도 곧 잘 연애 편지를 써 나보고 전해 달라 하였고 나는 슬그머니 그 내용을 읽어 보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나온 누나의 글 솜씨는 유창하기 짝이 없고 글씨체도 누나의 얼굴 답게 이뿌게도 참 잘 썼었는데
이상하게도 연애 편지에는 글씨도 삐뚤뺴뚤하게 썼고 내용도 그 형 꺼 하고 비슷하게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일부로 그 형의 자존심을 생각하여 수준에 맞춰 쓰느라 그랬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 하고 마음을 안 다치게 배려하는 가운데 둘의 사랑은 익어갔다.
어느 날 그 형이..미역 따는 거 구경 시켜 준다면서 누나랑 나랑 같이 가자 하였다.
너무 좋아 폴짝폴짝 뛰었고 누나도 쾌히 승락하였다.
머구리 배는 잠수하는 사람과 펌프질로 공기 넣어주는 사람등 두세명이 타는 작은 배이다.
그 형은 선장이 되어 굵은 팔뚝으로 키를 잡은 머구리 배는 통통거리며 신나게 바다를 갈랐다.
6월의 싱그러운 바닷 바람을 상쾌히 맞으며 긴 머리칼 휘날리며 이물(배의 앞부분)에 앉아 있는
누나는 정말 아름답웠다.
누나는 내 손을 꼬옥 잡고 있었지만 둘은 연신 눈을 마주쳤으며 오랫만에 활짝 웃는 누나의 얼굴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 형은 잠수부가 되어 아폴로 우주선 암스트롱이 썼던 것 처럼 생긴 잠수복에 무거운 납덩어리를 주렁주렁 달고
긴 호수를 생명 줄 삼아 수 십미터나 된다는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누나와 나는 계속 펌프질을 해 대며 산소를 공급해 주었고 30분 씩이나
잠수 했다 올라오면 바구니 한 가득 멍게등을 건져 올렸다.
심통이 났다 안 났다 하는 내 눈치는 아랑곳 없이 둘은 연신 하하..호호.. 거리며
앙~~ 벌린 입에 신선한 해산물을 초 고구장에 찍어 서로 먹여 주고 받아 먹고를 하면서 즐거워 했다.
내 눈치를 슬슬 보던 형은...
내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지...오징어 배를 건조하면 제일 먼저 누나와 나를 태워준다 했다.
그리고 드 넓은 바다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이 배로 계속 가면 남쪽 나라로 가는데
언젠가는 그 남쪽 나라에 가서 교회를 설립하여 전쟁 고아를 돕는 선교 활동을 해 보고 싶다 했다.
당시 월남 전쟁이 한창이었고 1964년 국군이 파월 된 후 신문 지상에 고아가 속출하는등 심심찮게 월남 국민들의
피폐한 전쟁상에 대해 뉴스가 보도 되었는데
선교 활동을 마음 먹었던 그 남쪽 나라가 월남을 가리킨 것이라고 나중에 알았으며
그 형의 부모가 6,25사변 때 돌아 가셨기 때문에 남달리 전쟁 고아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했다.
그리 말한 형의 얼굴은 굳은 표정이었으나 의욕과 희망에 찬 표정이 되어 정숙이 누나를 바라 보며
그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데 그 역경을 같이 헤쳐나가지 않겠느냐고 진지하게 말 하였다.
갑자기 얼굴이 불그레하게 물들어 더욱 이뻐진 정숙이 누나는
수줍어 하며 다소곳이...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갑자기 손가락 두개나 없는 보기 흉한 누나의 손을 덥썩 잡고서는 자기 얼굴에 갖다 대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한없이 사랑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감싸주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사랑의 맹세를 하고있는 중에
분위기 나게시리 갈매기 몇 마리가 던저 준 멍게 껍데기를 먹을려고 끼륵 거리며 머리위를 나른다.
그 해... 눈속에서 손가락을 잃었을 1년 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쯤 봄 날 같이 화창한 어느날 목사님의 주례로 교회에서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목발을 짚은 누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만 참석 하였을 뿐
집 나간 두 오빠는 오질 않았다.
나는 누나를 뺏긴다는 마음에 괜히 심통이 나 뿔퉁하고 있었지만
행복한 결혼식 날 한없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신랑의 팔을 꼭 붙장고 있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신부의 모습에
어린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그 어떤 것을 느끼면서..................................................
누나 행복하게 잘 사세요~~!!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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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 해 봄 나는 5학년이 되었지만...
누나가 근처에 없으니 잘 챙겨주지 않아 교회에 자주 가질 않았다.
누나가 보고 싶어도 일부로 누나네 집에 찾아 간다거나 한동안 안 다녔던 교회를
누나를 보기위해도 가지는 않았다.
누나의 결혼이 왠지 서운하고 섭섭하여 또 오기를 부리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나가 자주 행복해진 모습으로 신랑이랑 같이 부모를 보고자 왔을 때에나 내 어머니를 보고자 왔을 때
마지 못해 만나는 척 했을 뿐 거의 시쿤둥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누나는 하나도 안 변한 예전의 그 다정한 모습으로 내 마음을 이해하는 양 언제나 나를 다독거려주었다.
착하고 성실한 그 형은 어차피 본인의 부모가 없기 때문에 누나의 부모를 친 부모처럼 모시고
같이 살 것을 주장하였으나 이래서는 안된다는 두 부모의 반대로 신혼 살림을 형 집에서 냈지만 친정으로 자주 오는편이었다.

착한 누나의 남편은 누나가 안 오는 날이라도 사흘이 멀다하고
누나의 집에 찾아 와 용돈이며 먹을거며 다 챙겨주고 극진히 보살펴 주고 가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사위를 잘 봤다는 칭찬과 부러움을 아끼지 않았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
행복에 젖은 누나의 신혼생활이 어린 나에게도 흐믓하게 느껴졌고 이제는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데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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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학년이 되어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던 중
5월의 싱그러움에 마냥 기분이 상쾌하여 룰루 랄라 하며 학교에서 돌아 왔는데...
사색이 된 어머니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안절 부절 난리도 아니었다.
나를 보자 마자 어머니가....
'아이고~!! 애야 큰일났다.'
' 이 일을 어쩌면 좋노??'
' 세상에 우찌 이런 일이 있노??'
하며 대성 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대문 밖에는 쩔뚝거리며 정숙이 누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초 죽음이 된 얼굴로 오셨다.
어찌된 영문이지??
불길한 생각이 소름 끼치게 팍 돋았다.
경찰 아저씨가 우리집에 와서는 뭘 확인 한다고 쩔뚝거리는 누나 아버지를 놔 두고
내 어머니와 정숙이 누나 어머니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꺽꺽 거리며 울고있는 정숙이 누나 아버지는 거의 실성을 할 것 처럼 보였다.
물을 떠다주고 하여 겨우 진정이 된 정숙이 누나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결혼 후... 둘은 자주 바다로 같이 나가 신랑은 잠수하고 누나는 펌프질로 일을 도와주고 하였는데
오늘 아침에 바다도 잔잔하여 평소처럼 누나와 신랑이 함께 머구리 배를 타고 미역 따러 갔었다.
그런데..한창 미역을 따던 중 갑자기 돌풍이 불어 파도가 크게 일어
그만 배가 홀딱 뒤집어지고 말았다 한다.
마침 근처에 있던 다른 배들에 의해 누나와 형의 시체를 건질 수 있었고
건져 올려진 두 구의 시체는 부둣가에 옮겨 져 이를 확인 하라고 순경이 두 어머니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정숙이 누나의 아버지로 부터 애기를 여기까지 듣고는
'으악~!!!!' ' 안돼~!!!! ' 하며...숨이 턱에 닿도록 부두가로 달려갔다.
여러명이 웅성거리며 제마다...
쯔쯔...안됐어 정말...
젊은 사람이 정말 안됐어....
하며 꺼죽대기를 덮어 논 시체 앞에 안타까움의 탄성들만 지르고 있었다.
시체라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정숙이 누나 얼굴을 볼려고 발악하는 나를 어머니가 꼭 붙잡고 놔 주질 않았다.
그런데...
저 쪽에서 니어카 한대를 누가 급히 몰고 왔다.
아이고 이제 정숙이 누나를 싣고 산에 묻으러 가나 보다 하며 더욱 발악을 하였는데...
아니???? 이게 누구야??
리어카에서 내린 사람은...
신발도 안 신은 발에 흘러내린 피로 몸빼 바지가 온통 피 범벅이 되었고
얼국은 백짓장 처럼 새 하얗고, 눈은 까 뒤집어 지고, 머리칼을 산발을 한 귀신같은 모습의
정숙이 누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가운데
정숙이 누나는 꺼죽대기를 들춰 내고 파랗게 죽어 있는 남편을 끌어 안고 대성 통곡을 하였다.
' 하나님 앞에 맹세한 우리의 인연을 이렇게 접나요?'
' 하나님 앞에 기도한 우리의 계획이 이렇게 헛된 것이었나요?'
'당신이 계획한 선교사의 꿈이 이렇게 부질 없는 것이었나요?'
'당신의 아들을 당신이 책임져야 하잖아요?'
'제발 좀 눈을 떠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내 손을 좀 잡아주세요~!!'
' 오~!! 하나님 아버지...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저는 어떻하란 말입니까 흑흑...'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토해 내더니 끝내는 실신을하고 말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비통한 마음이 되었고 눈물 바다를 이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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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요약하면....
정숙이 누나와 신랑이 함께 해산물을 체취하던 중
돌풍으로 인해 갑작스런 큰 파도가 밀려 와 작은 배가 홀라당 뒤집어졌다.
마침 신랑은 바다 속에 잠수 중 이었고 누나는 열심히 펌프질 하여 공기를 공급하던 중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배가 뒤집어지자 배 위에 있던 누나는 바다에 나 동그라졌지만
마침 근처에 같이 미역 잡으러 나갔던 몇몇 배들에 의해 긴급 구조가 되었다.
바다에 떨어져 재빨리 구조 됄 수 있어 겨우 목숨은 구 할 수 있었으나 물을 많이 먹은 탓에
누나는 정신을 잃었고 남편은 또 다른 배가 구조 하기로 하고 급히 병원에 후송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바다속에 있는 사이 배가 뒤집어 졌기 떄문에 공기 유입이 안됄 뿐더러
거쎈 파도에 떠 밀려가는 배의 속력에 의해 공기 줄 마져 뽑혀져 강한 수압에 바닷물이
공기 호수를 통해 잠수복 속으로 밀려 들어 와 납덩이 가득 단 우주복 같은 무거운 머구리복을 입은 체
떠오르지도 못하고 그만 바다 속에서 익사 하고 말았던 것이다.
둘 다 죽었다는 거라는 얘기가 나온 건.. 물을 많이 먹어 실신한 상태에서 후송되는 정숙이 누나를 보고 그 정도면 필시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라도 죽을거라는 구조팀의 정황이 없는 성급한 판단에서 전해진 말이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누나는...
같이 따라 온 동료 어부들에 의해 남편이 죽어 부두에 안치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다고 판단한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에서 탈출하여
미친듯이 남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부두로 달려왔던 것이다.
누나는 당시 임신 중 이었는데..
바다에 빠지는 충격으로 인하여...또 난편이 죽었다는 충격으로 인하여 그만 유산이 되고 말았다.
아픈 배를 부여 안고 하혈이 낭자하게 흐르는 것도 모르고 달려오다가 도저히 배가 아퍼
더 달릴 수 없어 길바닥에 쓰러졌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리어카를 붙잡고 태워달라 애원하여 부두로 온 것이다.
누나는 유산으로 인하여 몸이 극도로 쇠진하였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터라 몇번이고 깜빡 깜빡 넘어 가
병원을 수없이 왕래하면서 모두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누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그 후 누나는 한달을 꼼짝 않고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여 예배당 집인 친정에서 머믈렀는데
바깥 출입을 일제 하지않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은 체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두달을 보냈다.
두 세달 시간이 지나자 큰 충격에서 벗어나 차츰 정신이 들었는지
내 어머니를 집에 오시라 하여 가족 회의를 열었다.
남편이 남겨 놓은 재산에 대해 어떻게 처분 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올 겨울에 오징어 배 30톤 짜리를 건조 할려고 저축 해 둔 큰 돈이 있었고
여기 저기에 적금과 계를 많이 들었으며
살고 있던 널직한 집도 꽤 값이 나갔고 또...논과 밭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깊은 신앙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살았던 남편이기에 누나도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남편에게 도움을 받고 빌린 돈이라며 스스로 갚는 사람들의 돈 까지 합해서
굉장히 많은 재산이 다른 상속 할 만한 가족도 없기 때문에 고스란히 누나에게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그야말로 누나는 큰 부자가 된 셈이었는데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하기 위해
정숙이 누나 집에 어머니를 부른것이다.
누나의 주장은 이 큰 돈은...모두 하나님한테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생전의 남편과 약속하였는데 때가 되면 월남에 가서 선교활동을 누나와 함께 꼭 하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뜻을 펴기도 전에 이렇게 되었으니 남편의 유언이라고 생각하여 남편 대신 교회에 헌납해서
남편의 유언대로 그 돈을 써 달라고 부탁 한다 하였다.
이상주위자 였던 정숙이 누나의 아버지는 좋은 생각이라며 누나의 생각대로 하라 하였고.
현실주의자였던 내 어머니는 누나의 의사가 그렇다면 반 정도는 교회에 헌납하고 나머지는 혼자 살아 갈 방편을 강구해야 한다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남편의 유언을 받들 의지가 강력히 있어 보이니 자금을 남겨두었다가 기회를 보아 직접 월남에 가
남편대신 불쌍한 전쟁고아 들을 도우라 하였다.그리하면 남편도 더 기뻐 할 거라 하였다.
골똘히 생각하던 누나는...어머니의 말씀에 일리가 있지만 누나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고
죽은 남편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손상 시키고 싶지 않거니와 또 죽은 남편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남편도 하늘에서 기뻐 할 거로 생각되어
모든 유산은 하나님에게 헌납하기로 결정 한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누나가 정신이 돌았다고 하였고
또.. 이 기회에 오빠가 진 빚을 받을려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으나
법적으로 청구 할 수 없는 출가 외인의 유산이었기 때문에 뭘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누나가 유산으로 받은 그 돈이 도대체 얼마 쯤 되는지 심심해서 지금 계산을 해보니...
배수량 30톤 짜리 오징어 배 한척이면 그때 당시 최고 수준의 배였는데 새 배로 건조 할 경우 약 1,800만원인데
저축 해 놓은 돈이 1,600만원 있었다 한다.
적금이나 계들은 거 타면 약 100만원이고 빌려준 돈 받은 거는 약 50만원이고
집과 논 밭은 약 200만원 쯤 되었다.
다 합산하면...1,950만원이었다.
이 돈을 누나의 남편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며 피땀 흘려 모았던 돈이다.
그 당시 쌀 한 가마니에 2,000원 정도 였으므로 쌀로 환산하면 19,500,000원 나누기 2천원 하면 9,750가마니 나 되었다.
요즘 쌀 값을 가마니 당 15만원을 치면 150,000원 곱하기 9,750가마니 하면...1,462,500,000원
요즘 돈으로.... 14억6천2백5십만원 이나 되는데 이것은 쌀값 기준이었고
GDP 대비 개별 물가 상승률로 환산하면 그보다 훨씬 더 큰 돈을 유산으로 받은 셈이다.
누나는 집과 땅을 모두 팔아 현금으로 만들어 누나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남편의 이름으로
1원 한푼 안 남기고 아낌없이 모두 헌납하였다.
사람들은 누나보고 제 살 길을 챙기지도 못하는 바보 천치라 하였으나
누나는 아랑곳 않고 하나님의 뜻 대로 한다고 하였다.
세끼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는 이러한 기부는 당시에 대단한 사건이었으며 이 소식이 알려져
기부식 때는 영동지역 각 개척 교회에서 많은 교회 관련자들이 몰려왔다.
그 자리에서 정숙이 누나 남편의 이름으로 정식 기부되었다.
고인의 평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깨닳아 천당에 가서도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 베푼다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목사님이 드렸다.
기부금을 받은 교회들은 증축을하였으며 정숙이 누나의 진실하고 참된 하나님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소문이 나 일반인들에게도
신앙심을 고취 시키는 계기가 되어 전도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로 찾아 성황을 이뤄 하나님을 믿게되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와 유사한 성경말씀을 내가 안다면 기술하였을텐데...아쉽기만하다.)
그 후..누나는 친정에 돌아 와 살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 찾아 다시 빨랫거리며 남의 집 허드레 일이며 전에 하던 일을
예전처럼 닥치는대로 몸 안 아끼며 열심히 일했지만 궁색한 살림은 더 나아지 질 않아 힘들어 하였다..
학교 갔다 오는 나를 가끔 불러 내어 교회 가는 지름길인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데리고 올라 가
아무 말 않고 그냥 먼 바다를 한참을 멍~ 하니 바라보고 내려오곤 했다.
오늘은 ..그 이쁜 얼굴이 꽤 초최해진 누나와 전 처럼 둘이 나란히 앉아 멀리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그 언젠가 성경책을 던져버렸던 그 언덕이다.
벌써 깊은 가을이라 꽤 추워진 바닷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였고 누나의 머리칼을 마구 뒤엉키게 한다.
바다에서는 하얀 포말을 품으며 파도가 한없이 밀려온다.
그저 멍~~하고 다소곳한 누나가
손가락없는 손으로 바다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 저기 배 한척이 지나가는 게 보이지??'
파도를 어렵게 헤쳐가는 자그마한 배 한척을 가르키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누나가 말했다.
'바로 저 지점에서 말이야.......바로 저기서......'
뒷말을 잊지 못하고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 내가 대신 죽어야 되는데.........'
내 손을 꼭 잡고는..
' 너무 마음이 아퍼 누나가 미칠 것 같애......'
품위를 지키려는 듯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지만..굵은 눈물을 흘리며 떠듬 떠듬 더 이어갔다.
' 너무 너무 보고싶어.............'
' 정말 보고싶단다....그 이가 보고싶어 미치겠어...............으흐흑~!! '
이제는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 어깨 쪽으로 쓰러졌다.
' 하나님 아버지 어찌해야 하나요?'
' 너무도 너무도 그이 가 보고싶은 걸 어찌해야 하나요?........'
' 너무 힘들어요......'
'이제 저를 그이 곁으로 데려다 주세요........네? 하나님 ??.............으으흐흑 ......... '
눈물인지 콧물인지 내 옷에다가 다 뭍히며 나를 꼭 껴안고 서럽게 울어댔다.
평정을 찾은 듯 한 누나의 요즘 생활이었지만... 이렇게 죽은 남편이 보고싶어 미치겠나 보다.
그럴 때 마다 나를 불러내어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내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배가 지나가는 그자리를 가르키며 바로 그 자리에서 남편이 죽은거라 했다.
불과 육지에서 300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진 해안 가까운 곳인데..
너무도 안타까워 나도 누나 따라 엉엉 울어댔다.
어둠이 깔릴 무렵 귀신처럼 일어난 누나의 눈에는
피 눈물을 흘린 듯 빨갛게 물들어 져 있었다.

훗날 중학생이 되어 방학 때 내려 와 누나가 보고싶을 때 나 혼자 이 자리를 찾았는데...
누나의 남편이 죽었던 그 자리 그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너무도 얄미워
누가 이기나 끝장을 보자며 밀려 오는 파도를 세어 본 적이 있었고
밭 고랑 다 메고 지게 작대기 짚고 절뚝거리며 다가 온 누나의 아버지가 한심한 내 꼴을 보고 한참을 얘기 했던 적이 있다.
그 언덕
그 바다...
그리고 가슴 아파하는 누나를 두고 나는 서울로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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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괴상한 이론에 심취해 있던
나의 어머니인 현제 등촌교회 김삼남 집사의 남달리 강력한 교육열에 의해

중학교 부터는 서울로 유학을 가야 했다.
결혼에 실패한 누나를 두고서
아니..누나를 잊고 이제는 서울로 올라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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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는 날 누나가 찾아와 바쁘드라도 교회에 등록하여 꼭 다니라하였다.
그것만은 누나와 약속 하자하여 그리한다고했다.

서울로 진학 한 후...
서울 생활에 익숙해 지려고 방학 때도 못 내려가고 공부만 열심히 했다.
교회 가기로 한 누나와의 약속은 늘 마음에 잽혔지만...
촌놈이 서울생활에 적응하려니 나름대로 바쁘다보니 차일 피일 미루다가 여태 교회를 가지 않았다.


간간히 들은 소식으로 누나는 아직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근 2년 동안은 그렇게 나도 바쁘게 사느라 눈에서 멀어진 탓인지 예전처럼 애절하게는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의 어머니는 서울 친척집에 맡겨져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옷가지 등을 챙겨 가지고 처음으로 상경했었는데
여장을 풀자 마자 누나의 소식 부터 물어 보았다.

결혼에 실패한 후...
한동안 상심해 있던 누나에게 염색공장 주인에게 혼담이 들어왔다.

마음이 피폐해진 누나는...
내 어머니의 극구 만류도 뿌리치고


'그 쪽도 엄마 없이 자란 애들이 불쌍하여 보살펴 주고 싶다는 이유와
교회의 목사님과 충분한 상의 끝에 경정되었다는 말과 함께

염색공장 주인으로 부터 소개료를 톡톡히 받아 챙긴 매파의 집요하고 끈질긴 설득인지
곧 바로 혼담이 이루워져 부모를 친부모처럼 잘 공경하겠다는 조건으로

밴뎅이 눈깔에 머리털이 눈섭 근처까지 나 이마가 하나도 없어 보여
융통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게스리 얌체같이 생긴 염색 공장 주인에게

지난 가을에 후처로 들어 갔다는 것과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도 예상과는 달리 염색집 딸들의(내 초등교 동창도 한명있다)
등살과 염색공장 주인의 난폭한 주벽과 폭력에 시달려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 까지 들은 나는 피가 꺼꾸로 솓구치는 걸 느꼈다.
누나가?? 이러면 안되는데...안되는데...해필 왜? 재수없는 염색공장 주인이람? 하며...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염색공장 담 벼락에서 숨박꼭질 하며 놀 때 시끄럽다며 딴데가 놀라며 작대기로
막 휘두르며 쫒아냇던 싸가지없고 밥 맛 없게 생긴 주인을 떠올렸다.
이러면 안되는데..안되는데...
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뭘 어쩌지도 못하였고

뭐든지 무조건 누나가 잘못 했다면서 한번도 안 내리고 업어 줄테니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한
맘씨 좋고 이쁜 누나의 얼굴을 떠 올리며

끝내 고집만 피우고 누나와 화해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내 좁은 소견 머리를 탓하며
그날 밤 나는 너무도 우울하여 밤새 울면서

감히 우리누나를 때려?? 하며...
알 밤 깎아 논것 처럼 반들거리 게 밥맛없게스리 생긴 염색공장 주인 놈을 죽여
누나 대신 복수 해 주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제법 구체적인 복수방법을 세우고 그 해 겨울 방학 때 2년 만에 고향에 내려 왔다.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누나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염색 집 식구들의 심한 학대에 견딜수 없으며 융통성 없이 얌체같이 생긴데다가 주벽까지 심했던 염색공장 주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까지 하였으며 병원에서 도망쳐 나와 퉁퉁 부은 눈두덩을 매만지며

밤 깊은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내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하러 왔었다 한다.
어머니와 누나는 이 얘기 저 얘기로 밤을 새웠고 2년 가까이 보지 못 했던 내가 제일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였다 한다.

딱한 사정에 어머니도 어쩌지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비책을 내 세웠다.
노모도 계신데 오빠들의 소식이 있을 때 까지라도 염색집에서 참아 보든지

아니면 타 동네 우리 친척집에 식모로 소개 해 줄테니 숨어있으면서
사태를 보자고 해결책을 권유 하였고

또. 서울에 있는 아들인 내가 언제까지 친척집에 머므르게 할수 없으니
이참에 방을 하나 얻어 자취라도 시킬 생각에서

두 부모는 어머니가 어떻해라도 보살펴 줄테니 오빠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때 까지라도
서울 가서 나와 같이 있으라 하였고

또 지금은 심신이 다 망가진 상태이니
당분간 마음이 안정 될 때 까지 같이 있으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누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정중히 사양하고 돈에 원한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며
다방 레지의 소개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간다했다.

그리고는 사별 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염색 공장에 후처로 들어 가 갖은 구박만 받고
1년도 체 살지 못하고 음산히 춥던 이번 가을 이른 새벽에 서울로 돈 벌러 무작정 상경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여기까지 누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당장 염색공장을 때려 부셔버려야 한다는 북 받쳐오르는
분노를 억제 못하자 어머니도 슬픈 표정이 되어

'니가 뭘 어쩌겠니?' 하면서
어머니도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밤새 두사람을 죽여 누나의 복수를 보기 좋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효성이 지극한 정숙이 누나는 서울에 올라 갔어도
두 노부모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두달에 한번 정도로 두번에 걸쳐 고향에 내려 왔었는데

아무도 모르게 자정이 넘은 시각에 우리집에 와서는 밤 새도록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이 트기전에 첫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가곤 했다는 것이다.

두 노 부모를 걱정하며 얼마간의 돈을 어머니에게 주며 잘 보살펴 달라 했으며
항상 내 안부도 잊지 않고 물었으며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한번 만나 봐야 하는데..

하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지금은 만날 수 없다면서 누나의 주소같은 연락처를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한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내려 온 김에 두 노부모를 만나 보라 하였고
혹시라도 오빠들에게 소식이 오면 연락을 해야 하니 서울 주소라도 적어놓으라 하였지만

오빠들에게 소식이 오게 되드라도 두달에 한번씩 내려 온 담서
끝내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고 노 부모를 뵙게 되면

정 때문에 다시 서울로 올라 갈 수 없게 된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바로 오늘 아침에 정숙이 누나가 두번 째 내려 온 날 새벽에 서울로 떠면서
이제 다시는 고향에 내려 올 수 없는 예감을 하였던지

나에게 전해 주라며
신문으로 포장한 자그마한 책을 선물로 주고 갔다.

그러니까...
내가 겨울 방학하여 내려 온 바로 오늘 아침에 정숙이 누나가 다녀 간 것이다.

아이고~하루만 빨리 내려왔으면 정숙이 누나를 만 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씩씩 대대었다.

방학해서 오면 나에게 전해 주라며 정숙이 누나가 주고 간 선물을 어머니가
내 앞에 내 미는 순간 마치 정숙이 누나를 본 듯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선물을 뜯는 순간

'정숙이 누나야~!!!' 를
크게 외치며 줄곳 어머니 얘기만 들으며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따라 울었다.

눈에 파무쳐 사고가 있었던 날 아무리 찾을려고 해도 못 찾고 말았던 잃어 버린
누나의 작은 손가방에 들어 있던 누나의 손떄 뭍은 그 성경책위에 곱게 적은 메모지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에게'
'우리가 잃어버렸던 성경책 두권을 같은 날 동시에 하나님께서 찾아주셨단다.'
'성경책 두권들 다 찾는 날 누나는 너무기뻐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누나가 마지막으로 선물 할 수 있는 게 하나님께서 찾아주셨던 내가 아끼던 이 성경책 한권 뿐이군아'
'그리고 네가 이 누나에게 줄려고 했던 성경책 고맙게 잘 간직 할 게'
'하나님은 늘 이 성경책과 함께 네 곁에 계심을 잊지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 잘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길 하나님께 누나는 늘~ 기도 할거야 '
'김정숙 씀'

정성을 다해 꼼꼼히 써 내린 가지런한 글씨체가 누나의 품위를 말해 주는 듯 너무 정겨워
수없이 반복 해 읽었고 나중에 정숙이 누나가 생각 날 떄 마다 꺼내 보곤 하여

지금까지 한자도 안빠트리고 기억하고 있다.

이만큼 얘기 해 놓고 어머니는 슬금슬금 잠이 오는 눈치였으나
눈알이 벌개가지고 씩씩대며 따지듯 케 묻는 나를 보시고 잠자기는 틀렸다고 판단하여

누나가 떠난 배경과 그동안 있었던 일을 졸면서 졸면서 마지막 얘기 까지 다 들려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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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던 이 언덕에서...나는..
눈이 다 녹은 후 성경책이 든 누나의 작은 손가방을 찾으러 몇번이나 왔다가 끝내 못 찾고 포기한 적이 있었지

그리고 교감 선생님한테 훔친 성경책을 누나가 받아주지 않자 교회가는 지름길인 바다가 바라 보이는
언덕에 올라 누나에 대한 미움으로 화가 잔뜩 나서 언덕 아래로 성경책을 던졌던 일도 있었지.

힘껏 아래로 던졌으나 어린 내 팔 힘으로는 두꺼운 성경책이 그리 멀리 날아 가지 못하고
풀섶 어디쯤에 떨어졌던 것이다.

화가 나 뛰쳐 나가는 나를 달래려고 뒤 따라오던 누나가 그것을 목격하였고
위험하게 나르듯이 언덕길을 도망쳐 가는것을 보고

혹시 넘어져 다칠까봐 더 걱정이 되는 상황이라
던져진 성경책을 그날은 찾지 못했다.

내가 학교 간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여러 날에 걸쳐 누나 혼자 그 언덕에 올라 가서
성경책을 찾아 보았으나 아마도 낭떨어지로 떨어진 것인지 찾 질 못하였다.

그때 나도 눈속에서 잃어버렸던 누나의 손 가방을 학교 끝난 후 오후에 찾으로 그 장소로 갔었고
누나는 내가 학교 간 후 오전에 찾으로 갔으니 서로 못 만났던 것이며 또..서로 성경책을 찾지도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달래고 달래어도 삐져 있는 나를 놔두고 할 수 없이 누나 혼자서 교회 다녀 오는 길에 후일 남편이 되었던 이명석 형에게 부탁하여
던져진 성경책을 찾으로 같이 오는 중에

눈이 다 녹은 사고가 있었던 그 길을 누나와 형이 지름길 언덕을 지나는데
우리가 빠졌던 깊은 웅뎅이쪽에 부러진 나뭇 가지랑 흙이랑 뒤범벅이 되어 있는 곳에 조금 삐져 나온 가방끈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였고 간신히 내려 가 흙 속에서도 별로 훼손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가방속에 든 귀중한 성경책을 찾았다.

누나는 무척 기쁜 마음이 되었고 얼어 죽었을 뻔 했고 손가락 두개를 잃어버리는 아비귀환 같았던
눈 속에서의 상황이 상기되었지만...그 속에서 생명을 건져주셨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다.

누나도 여러날에 걸쳐 찾으러 갔으나 찾지 못했던 내가 바다로 힘껏 던져 버렸던 그 성경책도
왠지 오늘은 찾을 수 있을것 같다는 희망 섞인 생각이 들어

내가 던져 버렸던 그 장소에 와 풀 숲 가지가지를 누나와 형이 샅샅히 뒤지기 시작하였는데..
어느 가지에 간당간당 간신히 매달려 있었던..

하마트면 센 바람에 의해 낭떨어지에 떨어져 바다속에 빠져 없어져 버렸을
그 성경책을 드디어 찾아 내어 위험을 무릅쓰고 긴 장대에 망태를 달아 건질 수 있었다.

사고로 인해 잃어 버렸던....................... 누나의 성경책
철 없는 오기를 부리며 던져 버렸던..........훔친 성경책

두권의 성경책을 같은 날에 한꺼번에 되 찾는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성경책을 되 찾은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누나는 성경책을 부여 안고 눈물을 흘리며 깊은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해 동안 두권의 성경책을 누나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오면 꼭 한권을 나에게 줄려고 했다 한다.

지금이 그 기회인 것 같아 누나의 성경책은 나에게 주고
내가 훔친 성경책은 누나가 간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우리가 이제는 헤어져 살지만 성경책을 찾아주신 하나님의 뜻이니까
기쁘게 받아 들인다고 했고

하나님 사랑은 어디에 가서라도 똑 같이 느끼니 서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공부 잘 하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는..정숙이 누나가 다음에 고향에 내려 오는 날 까지 누구에게든 비밀로 해 달라 하여
이러한 일 들은 이제...정숙이 누나와 어머니와 저..셋만 아는 일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잠이 와 꾸벅 꾸벅 조는 어머니를 들들 볶어대어 다 들을 수 있었으며
안타까운 누나의 이야기가 진행 되는 동안에도 누나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우는 나를 달래느라고 어머니도 애를 먹었으며
누나가 귀중한 성경책 두권을 동시에 찾았다는 대목에서는 감격의 눈물도 함께 솟구쳤었다.

그날 이후 정숙이 누나가 너무나 그리워져 몇날 몇일을 슬피 지냈는지 도 모르며..
정숙이 누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내게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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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방학 때 마다 집에 내려와서는..

정숙이 누나와 같이 손 잡고 교회에 다녔던 그 지름길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홀로 올라
바다를 보며 정숙이 누나에 대한 향수를 그렸다.


이 때 내 마음도 너무 초췌해져 한없이 밀려오는 저 파도가 얄미워 그 끝이 있을거라 생각하여
오기로 3270번이나 파도를 센적이 있었다.

한심한 내 꼴을 보며 절뚝거리고 밭고랑 매던 예배당 집 할아방으로 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그 할아방이 정숙이 누나의 아버지였다.

중학 3학년 올라 갈 무렵 또 고향에 내려 왔는데...

우리집에 자주 놀러 오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아줌마들의 입에서 또는 어머니의 입에서
그동안의 정숙이 누나네 집 얘기를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정숙이 누나가 서울로 간 이후 이듬해 봄
누나의 큰 오빠가 근 7년만에 돌아 와 집을 비워둔 체 부모를 모시고 포항으로 갔다 한다.

가자 마자 포항에서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홀로 된 정숙이 누나의 어머니를
못 모시겠다는 며느리 사이의 심한 갈등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누나의 어머니는 서울 간 정숙이 누나가 언젠가 돌아 올 거라며 기다려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집을 제법 살만하게 수리를 하여 되 돌아 왔으며

큰 오빠는 매월 생활비를 우리집으로 부쳐주어
나의 어머니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한다.

또 얼마 후에 이번에는 둘쨰 오빠가 멋진 승용차를 타고 와 그동안 신세진 동네 어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으며 노모를 데리고 어디로 떠날려고 하였으나

소식도 모르는 정숙이 누나를 기다려야 한다고
정숙이 누나가 극구 반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가을까지 기다려 봐서 정숙이 누나에게 소식이 없으면 겨울이 오기전에 집을 처분하고
꼭 부모를 모시고 떠나든가 아니면...아예 내려 와 집을 새로 짓고 노모와 같이 산다고 했다고 한다.

몇년 소식 없었던 오빠들이 번갈아 찾아오며 홀로 남은 노모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이런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들을 누나가 모르고 있는것이 안타까웠고
이렇게 좋은 일들이 너무도 기뻐 어서 빨리 정숙이 누나에게 소식이 오길 기다렸지만 끝내 소식이 없었다.




또 세월이 훌쩍 흘러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숙이 누나에 대한 생각 떄문에 자주 그리워 하고 애타 하며 복수심에 불탔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자 그 강도가 옅어져갔다.

내 나름대로 바쁜 서울 생활이라 정숙이 누나에 대한 것을 생각 할 겨를도 없었고
누가 누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누나를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잊고있는 상태였다.

그 무렵 나는 용산구 삼각지에 방을 얻어 보광동에 있는 오산 학교에 차비를 아낀다는 명목하에
주로 걸어서 등 하교를 할 때 였다.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 가던 중 이었다.
집으로 갈려면...이태원 방향에서 미 8군 출입 문 여러곳을 지나 육군본부 앞을 거쳐 삼각지로 가는 방향인데...

늘 그랫듯이...미 8군 출입문 앞에는...
하나같이 화장을 찐하게 무섭게 그려 부치고, 하얀 빽바지 빠짝 땡겨입고, 껌 씹는 소리 요란히 딱딱 씹으며,

짙은 화장 냄새를 풍기며 프라타나스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출입문에 들락거리는 미군들을 향해 야릇한 웃음짓는 여자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속칭 양공주)

평소에도 그들이 하는 짓거리를 약간은 흥미롭게 생각되어 그 곳을 지날 때
빽 바지 바짝 땡겨입어 볼록하게 튀어 나온 궁뎅이 부위를 히히..대며 친구들과 함께 째려보며 지나곤 하였는데..

그날도 몇몇 그룹의 앞을 지나는 동안 사춘기 절정의 호기심이 발동 되어 부풀은 기대감을 갖고
야릇한 마음이 일어 쳐다보고 지나는데...

마지막 출입문 쪽에 이르러 서는....

대 다수의 그녀들 처럼 울긋불긋한 묘한 행색을 하지는 않았고
하얀 목덜미가 다 드러나게 머리를 뽂아 올려진 이마에 해수욕장에서나 쓰는 썬그라스를 걸쳤지만

단정하고 다소곳한 차림의 그런대로 고상함이 돋보이는 모습의
어느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손에는 꽃무늬 양산을 펴들고는 살살 원을 그리며 돌려대고 있는 모습이 초복이 가까운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바라만 봐도 경쾌하고 시원스레 보이는 듯 한 인상을 풍기는 자태가 꽤 미인 인듯 싶다.

그 옛날 언젠가...초등 저학년 때 비오는 날이면 정숙이 누나가 교실 옆 프라타나스 나무 밑에서
우산을 빙빙 돌려대며 한폭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 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그런데.....???

'아니 저게 누구야??'

머리를 지지고 뽂고...썬그라스 이마에 걸치고...화장도 짙게 하였지만...
보기만 하여도 편안해 보이는 우수에 잠긴듯 한 그윽한 두 눈.

그 언젠가 어느날 우리집 사랑에서...
온 집안 빈대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을거라고 놀려댔던 눈 밑에 선명한 곰보딱지 두개...

혹시...???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다.

순간...

파라솔을 빙빙 돌리고있는 그녀의 하얀 왼손을 쳐다 봤다.
왼손 손까락 두개가 없는 게 분명히 보였다.

그때 우리집 우물가에서 빨래 할 때 손가락 두개 없이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이 불쌍해 보여 쳐다 보고 있으니....
'뭘 보니??' 하며... 장난으로 얼굴에 물 티김을 당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아직 나를 의식하지 못 한듯
양산을 계속 돌려대며 딴전을 피고 있었다.

그래~~!!
분명...맞어~!!

갑자기 가슴이 쿵쾅 뛰는 걸 느꼈다.

다방 레지의 소개로 서울로 돈 벌러갔다는
고향의 그 정숙이 누나였다.


순간 너무도 반가워..
앞뒤 가릴것 없이 달려가 손을 덥썩 잡으며

'정숙이 누나야~!!!'

하고 누가 보거나 말거나 너무도 반가워
울먹이는 소리로 크게 불렀다.

급작스런 상황에 그녀는 깜짝 놀라는 것과 동시에 나를 금새 알아보고는...
손을 뿌리치고 얼른 얼굴을 외면하려 했지만...

그 상황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반가워 죽을려는 듯 오히려 내 손을 더 꼭 잡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내 그 고운 눈에 검정 눈물을 펑펑 흘리더니 뭐라고 쭈삣쭈삣 입을 움직이며 꺽꺽이는 소리로 말을 하였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질 못하였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양공주 들이 신기한 듯
주변에서 몰려 들었다.

'애? 8숙아??' (나중에 알고 보니 손가락이 8개만 있다 하여 8숙이로 불리운다 했다)
'쟤 누구야??'

'친척이니??'
'사촌동생이니?'

'친동생이니??'
'설마 얘...기둥은 아니지?? '

하며 히히..호호...제 각각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댔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잠시 나마 손을 꼭 쥐고있었다.

제 정신이 든 정숙이 누나가
왜?? 아는 체 했냐는 원망 섞인 슬픈 눈으로 날 째려 보더니...

내 손을 낚아 채 듯 끌고는...
해방촌 입구 어느 꼬불꼬불한 후미진 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똥개가 무섭게 짖어대는 허름한 한옥 집 안 구석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정숙이 누나는
말보로 양 담배 한대를 꽤 폼나게 한대 피웠다.

담배 연기 탓인지 기침을 연신 콜록거렸다.
담배 한대를 다 태우도록 말이 없던 누나가...

성경 책 사건 떄문에 삐져 있었던 나를 달래려고 했던 그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그제서야 내 얼굴을
손가락 없는 손이지만 예전의 그 다정스러웠던 손길로 어루 만지고서...

'그래..오래간만에 보는군아. '
'그동안 몰라보게 참 많이 자랐네.'

'공부는 잘하고 있겠지?'
'어머니도 잘 계시지??'

가련하게 생각되어 물심 양면 도와 줬었던 나의 어머니 안부도
잊지 않고 챙기고서는

눈을 풀고..
손을 풀고..

그리고 가슴의 한을 풀기 위함 인듯 방 바닥에 엎어져
울어대기 시작했다.

작은 어깨를 들썩 대며 얼마나 서럽게 울어 대는지
덩달아 나도 서러움이 북 받쳐 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츰 방 분위기에 익숙 해 지자 누나의 울음 소리는 아랑곳 않고 방 분위기를 살펴 보니
야스런 사진 몇장 벽에 함부로 붙어 있고 잡다한 화장품들이 한가득 경대 위에 어지러히 놓여 있었다.

꼬질거려 보이는 침대 옆에는 겉 표지에 서양 남여가 낯 뜨겁게 벌거 벗고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성인용 잡지책 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 바닥에 머리칼을 형편없이 흩트리고 울고 있는
누나가 울거나 말거나
그 와중에도 호기심 가득히 자세히 째려 보고 있었다.

목 놓아 울면서도 생각이 났던지..
주섬주섬 잡지 책을 챙겨 비키니 옷장 뒤에 쳐 박고는 또 계속 울어댔다.

세파에 찌들어서 인지 짙은 화장빨에 감춰져서 인지 예전의 그 청순하고 아름답던 모습은
별반 찾아 볼 수 없었으나 또련한 이목구비에 아직도 은근히 풍기는 고즈녁한 품위는

저렇게 서럽게 업어져 울어대는 뒷모습에서 찾아 볼수 있어 그 옛날 누나에게 업혀 다니면서
귀밑 머리칼을 입에 물고 잠들었던 향수가 치밀어 올라 애련한 마음이 되었다.

손가락 두개가 뚜렷히 잘려진 왼 손목에는 금 도금 된 링을 필요이상 많아 보이게 네개 씩이나 차고있어
손가락 없는 허전함을 링으로 카버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듯해 마음이 아펏고

전에는 누나의 철렁이는 젖 가슴이 내 눈에 닿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키가 나보다 훨씬 작아져
머리칼 풀어 헤치고 방 바닥에 엎어져 하염없이 울고있는 누나의 작은 어께가 측은하고 불쌍해 보였다.

책상이랄 것도 없어 보이는 호마이카 밥상위에 놓인 몇권의 책들을 보니 아마 책상 인듯 싶다.
그 책상위에 방금 읽은 듯 한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혹시? 그 책??
옛 기억을 더듬으며 얼른 성경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에..눈속에 잃어버렸던 누나의 성경책과 내가 던져 버렸던 훔친 성경책을
누나가 같은 날 동시에 찾은 일이 있었지

누나가 서울로 무작정 상경 할 때 두권의 성경책 중 내가 훔친 것은 누나가 갖고
누나의 손때 묻은.. 눈속에서 잃어버렸던 성경책은 나에게 선물을 주었었지.

'그래~!! 바로 이책이다.!! '
누나가 언덕 낭떨어지에서 찾은 내가 던져 버렸던 바로 그 성경책이었다.

그동안 색갈이 바래고 낡아 보였지만 그 성경책이 틀림없다는 게 확인되니 너무도 눈물겹게 반가웠다.
아~!!

누나는 나를 이렇게 감동케 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군아.
상경 후 모진 고생의 연속이었을 텐데 그 성경책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다니..

누나의 일생이 너무도 힘들고 고달퍼 보이는데도
하나님을 향한 누나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구나.

순간...
누나가 실컷 울고 있는 가운데서도 선물로 준 누나의 성경책이 떠 올랐다.

지난 해 여름 쯤 이었던가 극성을 부리던 쥐 소탕 작전으로 온 동네가 일제히 쥐약을 놓아 둔 적이 있었는데
쥐약 먹은 쥐가 다락방에서 죽어 썪는 냄새가 역겹게 진동하여 청소하러 다락에 올라 갔다가

먼지 투성이가 된 묵은 교과서들과 함께 구석에 방치 되어있던
누나가 선물로 준 성경책을 보았다.

한 동안은 누나가 준 성경책을 자주 읽지는 않았지만 잘 간수하였고 그 속에 끼워둔 누나의 편지를
누나가 생각 날 때 마다 보곤 했었는데..

한적하기만 했던 시골 촌놈이 바삐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 적응하느라 차츰 성경책을 보는 횟수도 줄어 들었고
누나에 대한 감정도 그전 같지 않아 흐지부지 하던차에 성경책의 행방도 모를 정도가 되었었다.

잊고 있던 그 성경책을 다락방에서 다시 보니..누나가 상기되어 느낌은 좋았지만..
나중에 다시 올라 와 정리 하리라고 맘 먹고 별 대수롭지 않게 한켠으로 치워 뒀던 게 생각이 난다.

방금 읽은 듯한 호마이카 밥상에 펼쳐져 있는
누나의 성경책을 보니...

성경책 두권들 다 찾는 날 너무 기뻐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는 것과
누나가 마지막으로 선물 할 수 있는게 하나님께서 찾아주셨던 내가 아끼던 이 성경책 한권 뿐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늘~ 이 성경책과 함께 내 곁에 계심을 잊지 말라고 한 누나의 편지가 생각나...
나는 또 누나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것과 배신을 때리는 일을 했다고 생각 했다.

누나를 도와준 적은 한번도 없고 이때 까지 누나에게 신세만 지고 산다 생각 했고
그런 착한 누나를 잊고 있는 내 자신이 하나님에게 죄만 짓는 놈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방금 읽은 듯 펼쳐진 성경책을 보니 누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꿋꿋히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눈 속에서 얼어 죽었어야 할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생명의 사자인 누나가
그야말로 나 때문에 손가락를 잘라내야 하는 고통도 감수하고도

끝까지 나에게 만은 헌신적이었던 누나의 애닮픈 울움소리에 동화되어
나도 큰소리로 엉~엉 울어댔다.

한참을 울고 나서 담배를 물더니 담배 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서럽게 품어 내더니
그동안 제일 궁금했던 부모의 소식과 고향 소식을 이것 저것을 물어 보았다.

대충 내가 알고 있던 고향의 소식을 이렇게 애기 해 줬다.

누나가 서울로 떠난 후...객지에 나갔던 누나의 큰 오빠가 잠시 돌아 와 부모를 모시고
원래 고향이었던 울산에 갔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다시 고향에 돌아 왔었고

허물어져 가는 집을 대충 수리해 놓고서는 나의 어머니에게 상당액의 돈을 맡겨 놓고 두 세달 후에
다시 모시러 올 테니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서는 누나의 어머니만 남겨두고 도로 갔다 했다.

그리고 전혀 소식 없었던 작은 오빠도 느닷없이 돌아 와서는 그동안 신세진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배풀어 주고 곧 돌아 와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약속을하고 갔다 했다.


여기 까지는 사실 그대로인 이 말을 누나에게 했다.
누나의 눈에는...몇년 동안 보살피지 못했던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한 여식의 마음이 역역해 보였고

아버지를 큰 오빠가 모시고 고향인 울산에 내려 가 머믈다가 돌아 가셨다는 말에...
그래도 큰 오빠 앞에서 가셨기 때문에 큰 다행이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자식 앞에 행복하게 돌아가시 게 된 것은 하나님 은혜를 받은 때문이라며
' 늙고 몸 성치않은 아버지께서 아들 앞에서 행복하게 편히 가시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덕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

하며...즉석에서 감사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년전 여름 방학 때.. 성경책을 던져 버렸던 그 언덕에 올라 누나를 생각하며 무모하게 파도를 셋던 적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라 가르쳐 주셨던 그 할아방이었다.

그리고 누나는...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곧 어머니를 모시러 온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누나의 기쁨 넘치는 얼굴을 보자 나는 더 신이나 내 나름대로의 예측의 통빡을 이렇게 지었다.

(오빠들이 다녀간 후 그동안 반년 정도 세월이 흘렀으니까 잔치 베풀고 간 작은 오빠나 큰 오빠가 지금 쯤
분명히 돌아 와 홀로있는 노모를 모시고 잘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꽤 신빙성 있고 따끈거리는 최근의 소식 일 것 같이 생각되어
누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힘있게 누나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누나~!! ??'

'지난 늦은 봄 어느날...'
'잔치 베풀고 간 그 작은 오빠가 고향에 다시 내려 와서는...'

객지 생활이 여의치 않아 왔다면서 친구의 소개로 어판장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는 것과
큰 오빠가 대충 수리는 했지만 그래도 흉해 보이는 그 집을 다시 수리하여

'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단 말이야~!!'
고 마치 본 것 처럼 그리 희망있게 말해 주었다.

그 희망( ? ) 있어보이는 그 대목에서는...

'아이고~!! 엄마야~!!'
' 오빠~!! 너무너무 고마워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또 목 놓아 한참을 울어 댔다.
우는 데는 참피언 급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잘 울어댔다.

희망 있어 보이는 나의 말에 의해
누나의 기쁨 가득한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신이 나서 더욱 추리력을 발동하여 하여 말을 이어갔다.

'그 얘기를 들은 것이 두 세달전 인 지난 봄이었으니까~ '
'지금 쯤 노모하고 오빠가 고향에 와 살고 있을거야~!!'

라고..내 나름대로 확실한 단정을 짓고 그리 얘기 해 줬더니...

참말이냐?? 고 하면서
'아이고~!! 엄마야~!!'를 부르면서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을수 있냐 하며...

내 손을 또 꼭 잡고 우눈데는 이골이 난 양..
몇년치 기쁨의 눈물을 한꺼번에 다 빼댔다.

누나가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나는 한 통빡을 더 지어서...
'작은 오빠랑 홀 어머니가 누나를 찾으며 무척 기다리고 있다 했어~!!'

'당장 고향에 내려가 봐~!!'라고 했다.

'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며 눈물인지 콧물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범벅이 된 얼굴로
우느라고 더욱 심해진 기침을 콜록 거리며 또 감사 기도를 하였다.


우는 것 들어 주기도 이제 지겨워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할 무렵...
본인도 너무 운다고 생각했던지 무안해 하며 끽끽거리며 겨우 그치는 척 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은 후...
이어진 정숙이 누나의 얘기는...

'그래..너무 고마운 일이다.'
'오빠와 어머니가 함께 산다니 이제 마음이 놓이는 구나.'

'하지만..난 지금 내려 갈 수 없단다.'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인간 관계의 일들이 현제로서는 너무 많다.'

이 일들이 곧 해결되면 고향에 꼭 갈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추천으로 선교 활동 차 미국으로 갈 것 같단다.'

인간 관계의 이 일들이란 게 누나는 궂이 말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처참한 생활을 곧 정리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 쯤은 눈치로 알만 하다.

' 그동안 이 누나의 생활은...니가 봤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다.'
' 너에게 실망을 안겨 줘 정말 미안하구나~!!'
' 흑흑~!!'
그렇지만..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몇번이고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그 누구에게도 이 생활을 감추고 싶지 않아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사람들도
다 아는 바이고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하며 누나를 도와주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고향에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아~!! 나는 그동안 무얼 했는가?? 어렸을 적 누나와 교회 다니면서 누나가 내게 해 주었던 말들이 기억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누나의 말들이 떠 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몸과 마음이 갈기 갈기 찢어져 지칠대로 지친 체 악몽 같았던 염색공장을 뛰쳐나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 상경해서 별별일을 다 하다가...

돈에 원한이 져
많은 돈을 번다하여 자청해서 이 일을 하게 됐노라고 말 하였다.

올 겨울 쯤에 사귀고 있는 미군 병사 누구와....결혼하여...미국으로 간다고도 했다.
아마....미국 가기전에는 고향에 꼭 한번 들릴거라도 했다.

힘주어 말하는 이 대목에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미 와 살고 있을것 같은 작은 오빠와
노모를 만난다는 기쁨에 눈을 반짝이며 말 했다.
(그렇지만...그후 누나가 고향에 왔다는 소식를 나는 절대로 듣지 못했다)

거진 얘기를 마치고 집에 갈려고 하던 참인데...
짝대기가 서너개 쯤 되고 갈매기가 두개정도 더 붙은 계급장을 여러 군대 단 등치 커다란

백인 병사 하나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헉~!! 겁나라~~

약간은 긴장된 분위기였으나...
누나가 뭐라뭐라 영어로 막 지끄리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누나에 대한 은근히 좋았던 감정이 왠지 이상한 기분이 되었고 숨이 막힐 지경이어서
얼른 그자리를 나오고 싶었다.

머쑥해진 내 모습에 누나는 미안해 하는 눈빛이 되어 안받겠다고 하였으나 악작같이 용돈하라며
몇천원 정도를 내 손에 쥐어 줬다.

그리고...꼬불거리는 골목 끝까지 따라나오며
내가 사는 집이 삼각지 어디 쯤인지 자세히 물었다

여름방학하여 고향가기전에 꼭 찾아갈테니
그 떄 만나서 다시 얘기 하자 하였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이렇게 만나 한 얘기 모두를 꼭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을 잊지않고 신신당부 했고
다시 생 이별하는 남매 처럼 눈물로 배웅을 해줬다.


그 후 여러차례 방학때 마다 고향에 내려 올 때면...
간간히 누구의 입에서라 든가 그 누나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듣고는 있었지만...
누나와의 약속 때문에 미군부대 앞에서 봤다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 보다도 더...
정숙이 누나의 오빠들이 돌아 와 그 허름한 집을 수리하고 예전처럼 다시 살기를 간절히 고대했지만...
오빠들은 끝내..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내가...
이태원 미군부대 앞에서 누나에게 한 얘기 중

지금 쯤 작은 오빠가 부모님 모시고 고향에 와서 잘 살 것 이라고 누나를 기쁘게 하려고 신이나서 한 얘기는
형편없이 빗나갔고 책임성 없는 말을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

사실...나는 막연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몰래 괴로워 하였다.
나의 빗나간 예측의 말을 믿고 퉁퉁 붓도록 기쁨의 눈물로 범벅을 이루웠던 그 얼굴

내 말을 진짜로 믿고 희망의 눈빛이 되어 내 손을 꼭 잡았던 반짝이었던 그 눈...
내 말에 희망의 눈빛으로 빤짝였던 그 누나의 기뻐하던 그 모습...
눈속에서 나를 구할려다 잘린 두 손가락...
훔친 성경책을 언덕에 던져 버렸던 그 일..
이러한 것들이 평생 내 가슴에 남아 이렇게 정숙이 누나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이글을 쓰고있는지도 모른다.


그 후 몇년의 세월이 또 흘러 내가 군대 가던 날 송별회 연에서 거의 잊혀졌던
그 누나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친구들과 모여 잡다한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얘기 끝에 흘러나왔는지 모르지만...
아마도...염색공장 딸이었던...내 여자 동창한테서 그 누나의 이야기가 나왔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한 때...잠시나마 미우나 고우나...
지 아버지와의 관계가 있었으며 싫든 좋든 새 엄마라고 불렀을 것이고 조금은 챙피한 마음도 들어 이런 애기는 삼가해야 할 것인데...

그런 정숙이 누나의 얘기를...
내 여자 동창생은 친구들 앞에서 거침없이 험악하게도 내 뱉었다.

'우리집에서 도망 갈 때 상당액의 돈도 훔쳐갔으며...
'그집은 망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빠들도 죽거나 형무소 생활을하고 '
'그따위 도둑년 집안이 잘 될리가 있냐...
'그년은 양깔보가 되여 껌둥이하고 살다가 애 둘이나 낳고 챙피해 미국으로 갔다가
거시서 폐병으로 죽었다.'

하며...
그 여자 동창생은 자신의 집 가정생활의 일부분이어서 인지 대단한 중요성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숙이 누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으며
내 어머니도 몰랐던 소식들을 막 뱉어내며 많은 내 친구들 앞에서 들으라는 듯 더 세차게 몰아부쳤다.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가 있을까?? 하고 순간 피가 꺼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지만
모두들 별 관심 없다는 듯 딴전을 피울 뿐 그 누나의 가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질문을 하거나 더 알려고도 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에 내가 따지고 덤빌 일이 아니어서
달리 뭘 어쩌지도 못하고 씩씩대며 여자 동창생을 원망의 눈초리로 째려만 봤다.

그런데...정숙이 누나가 미국가서 죽었단 말인가??

이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나는 군대를 갔고
세월이 덧 없이 흘러 누나가 살았던 허름했던 그 집도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게되었고

그 후 누나를 아무도 볼 수도 없었거니와
이제 그 누나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어찌 되었는지 소식도 다시는 들을 수 없었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40년이란
긴 세월속에 아주 잊혀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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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영웅이 한국에 왔다.
흑인계 혼열아인 하인즈 워드다.

미 프로 미식축구 선수권 대회서 당당히 최우수 선수로 뽑히었고 일약 톱 스타가 된 그의 귀국은
온 국민이 환영하는 바이었다.

모든 혼열인들 뿐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도약하려는 청소년 들에게 선망이며 희망이요
그야말로 그는 영웅 그 자체였다.

그가 오기전부터 언론에서는 그에 관한 기사거리로 신문 지면이 꽉 찰 정도로 역경을 이긴
그의 성공담을 앞다투어 대서특필하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어렵게 살아던 미국 생활은 어려서 부터 고생의 연속이었겠지.
그러나 나름대로 목표를 위한 초인적인 열정을 기울였으리라~

그가 성공하기 까지에는 몸 바쳐 뒷 바라지 해준 그의 한국인 홀 어머니인 김영희씨의 공이 컸다고 한다.
타국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었던 냉냉한 인종 차별 속에서 어린 아들을 부여안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피 눈물 나는 고생을 하였겠는가?
모든 고생을 감내하고 오직 아들을 키우기 위한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심정으로 이를 악 물었으리라~
징그럽게 가나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국제 결혼을 했던 신세를 한탄하였겠고

그 당시 가난했던 조국을 원망하고 그리고 몇번이고 생을 포기 할 각오를 다졌겠으리라~
아들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어쩌면 재가 해 다른 인생으로 잘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김영희씨는
한국 어머니의 저력과 열정적인 모성애의 근성으로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이는 오늘의 워즈가 있었겠는가?
이러한 상황이 오로지..김영희씨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60~70년대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으로 빚어진 많은 국제 결혼한 우리의 여성들은
거의 같은 상황이었으리라~

힘없이 가난했던 조국과 가정을 원망하며 한시대 희생양이 됀 그녀들에게 우리는 손가락질 하며 무엇이라 불렀던가?

이 부분에서 ...

나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김정숙 누나와 김영희씨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고
마침내는 (하인즈 우즈의 어머니인 김영희씨가 ) (나의 누나 김정숙이라고) 생각되었다.

시종일관 아들의 손을 잡고 대견해 하는...
TV에 비친 우즈의 어머니 김영희 씨를(김정숙 누나) 눈여겨 봤다.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안경 태 넘어로 감춰진 깊게 패인 30년 인고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비춰 지나가는 듯 했다.

거기에는...
개구장이였던 저에게 눈쌀 곱게 홀기며 손가락으로 내 얼굴에 물티김을 하며 빨래하던 이뻣던 모습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는 척 했던 저를 업고 교회에 다녔던 뒷 목덜미가 정겨웠던 모습이...
눈속에서 저를 구하기 위해 손가락 불구가 될 정도로 처참히 몸부림 쳤던 그 긴박했던 상황이...

믿었던 남친에게 배신 당해 하늘이 무너진 듯 그리 슬피 울던 가련했던 모습이..
자포자기 상태에서 염색공장 주인에게 팔려가 웃음을 잃었던 퍼석거렸던 모습이...

이태원 미군부대앞에서 하얀 빽바지 땡겨 입고 양산돌리고 있던 야릇한 모습이...
작은 오빠가 부모님을 다시 고향에 모시고 와 잘 살고 있을거라는 빗나간 내 예측의 말에

너무도 감격해 펑펑 울던 그 모습이...
이러한 처절한 기억들이 애련하게도 묻어 나왔다.


이렇게 우즈의 어머니인 김영희씨를 보고 김정숙 누나라고 생각하며 남다른 상념에 빠져있는 나에게는...
40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버린 이 쯤에서는 잊혀져 기억도 없었던 김정숙 누나를 다시 상기하니...

인생은 부귀영화도 헛됨이요~ 삶 자체도 덧없다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의 비애를 느끼게 되어
미움, 질투, 시기심,과욕,불만등 이기적인 생활 속에 묻혀 살아가는 모두들의 삶이

순수한 사랑이 결여된 빈 껍데기속의 아우성이라고 생각되어 마치..
견문이 좁고 오만하다는 요동지시(遼東之豕)의 작태로만 같아 보여

그 먼 옛날 안타까운 추억으로 아련히도 남아있는 내 아픈 기억들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눈구덩이에 빠져 사경을 헤메며 어쩌면 그 때 얼어 죽었어야 할 내 운명이 누나의 살신성인같은 희생으로 인해 건져 지게 되어
내 목숨은 쉽게 죽어 버리는 하찮은 그런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늘 느끼며 살았는데...
그렇다면...
그 사건 이후 40년 이상 살아 오는 내 인생은 무었이었던가? 과연 그보다 더한 대가를
하나님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내 삶은 무었인가?

이 사회에 특별한 사람이되어

무한하고 영원하며 영혼을 다스리는 하나님 앞에 고작 40년의 세월을 가지고 무뢰한 호들갑을 떠니..
그 죄는 또 어떻게 감당 하려는지??

그져...나는
한마리의 호랑나비가 되어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 처럼 비몽하니...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40년 그 세월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인가?
하나하나 추구해 나가던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하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상태가 되어

혼돈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니..
아~~이런 일들은 이 꿈에서 깨어나도 모르겠구나.

만겁의 세월 중 고작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인생
그 만겁의 세월을 다스린 하나님은
주여~!!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2006년 4월 10일 산강 ---정 근 영---














이쁜소라 (2006-08-11 오후 9:42:41)
어휴....감동 ...애잔함이 저 깊이서 끓어 올려집니다...아련한 추억이된 일들을 ... 그리도 소상하게...
니오 (2006-10-02 오전 12:38:49)
김영희씨가 김정숙씨..아니지요??희망사항이신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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